(*주의* 아직 매트릭스 리로디드를 보지 않으신 분은 만족스런 영화감상을 위해 이 뒷글은 읽지 말아주세요.)

볼거리는 많은데, 보고나서 쪼까 껄적지근한 것은 3부작 사이에 낀 2편의 숙명같은거 아닌가요? 스타워즈 3부작도 2편이 제일 흥행성적이 안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고두고 회자되는 다스베이더 전격고백, "내가 니 애비다!" 라던지 설원의 A-Wing 액션씬 같은 것들은 2편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3편은 1편 우려먹기였고요.
결말이 결말같지 않다는 점만 빼고는 매트릭스 2편도 대작 소리 듣기에 부끄럽지 않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라고 인식하는 나는 진짜 나인가? 라는 악몽같은 질문이 1편의 키워드였다면, 2편은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내릴 것이라는 예언과 그 희망 또한 억압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교묘한 술수였다는 음모론이 등장합니다. 1편이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로 보고 저항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2편은 그 저항 자체가 무의미한 짓이었다는 결론이 나버리니 당연히 보고나서 씁쓸할 수 밖에 없겠죠.
그래도 이연걸 나오는 홍콩영화를 스토리 때문에 극장에 영화보러 가는 건 아니듯이 액션씬 하나 만큼은 있는대로 돈 퍼부어서 만들었으니 한번쯤은 볼 만한 영화입니다.
마케팅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매트릭스 1과 2 사이의 이야기들을 영화가 아닌 다른 매체로 출시해서 멀티미디어적으로 돈 벌어보자는 개념이 확실히 두드러집니다. 비슷하게 돈 퍼부어 만든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도 게임으로 만들어졌지만 그것은 영화의 내용을 게임으로 옮긴 것이지 오리지날 스토리를 가지고 게임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반면 매트릭스는 1과 2 사이에 오시리스 최후의 비행이라는 CG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내용은 매트릭스의 벌레들이 시온 위를 관통하는 구멍을 뚫어 대대적으로 쳐들어올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오시리스의 승무원들이 매트릭스(가상세계)와 현실을 오가는 대 추격전 끝에 시온에 그 사실을 알리고 승무원들은 장렬히 숨진다는 내용 + 2편에서 네오가 시온에 도착하자 귀찮게 친근감을 드러내며 달라붙는 소년이 어떻게 매트릭스에서 탈출해 시온에 오게 되었는가 등등 기타 매트릭스 관련 에피소드들이 모여있어서, 매트릭스 1.5 애니메이션 판을 본 사람이라면 2탄의 모니카 벨루치의 깜짝 출현에 재미를 느꼈듯, 1.5를 본 사람만의 숨어있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식입니다.
같이 출시된 매트릭스 게임은 매트릭스 2탄의 마지막에 등장해 꽤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나오미 함장이 영화판 매트릭스 2에서 네오가 대활약을 하는 동시간대에 무슨 역할을 맡았는지 나오미와 고스트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영화에서는 네오라는 주인공에 가려져 삭제되었던 조연들의 이야기가 반대로 게임에서는 엑스트라가 주인공이 되어 2편의 영화내용을 되짚어 본다는 설정이죠.
결국,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을 다 접해봐야 매트릭스 시리즈의 전체 이야기를 알 수 있다는 (몰라도 상관은 없지만) 얘기가 됩니다. -_-a
이것이야말로 매트릭스가 오락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겠습니다. 평론가들 이상한 말 갖다붙여 철학적 고찰 운운해봐도 아이들 장난감을 보며 격세지감 느끼는거나 별반 다를거 없다 이말이죠. ( ``)

아하,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그런 내용이었군. 검돌이 덕분에 그런 배경까지 알게 됐네... ^^
근데, <매트릭스2>를 보고 난 후 남녀 관객들의 반응에 확연한 차이가 있는 거 알아?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 영화 보고 나오면서, 남자들은 팔을 휘두르면서 네오의 현란한 무공을 흉내 내기에 정신 없고... ^^; 여자들은 그런 거보다 네오와 트리니티의 애틋한 사랑의 느낌에 필이 꽂혀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전화기를 드는 거 같애. ^^;;

어제 봤습니다. 극장을 나서면서 드는 생각, 워쇼스키 형제가 대체 이 뒷이야기를 어찌 감당하려고 이렇게 서사를 비비 꼬나.. 였습니다. 시온은 망했고, "The One"의 신화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거짓 예언이며, 네오는 코마에 빠졌다.. 결국 3편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펼쳐지는 네오와 스미스의 한 판 승부? 이러다 결론이 "모든 것은 꿈이었는데, 인간이 꿈을 꾼 것일까 기계가 꿈을 꾼 것일까" 뭐 이따위 장자론 호접몽이 아닐런지..
애니매트릭스의 정식 DVD가 유월 초에 나온다던데.. 개인적으로는 매트릭스 리로디드 보다 애니매트릭스에 더 관심이 갑니다.(아홉 개 중 다섯 개 봤습니다.) 영화의 세계관을 뒷받침해 주기 위한 외전격의 단편들이 오히려 훨씬 다양한 변주들을 지닌다는 것은, 역시 키취 문화의 장점이 아닐런지.(원작의 아우라는 집어치워라!!)
영화 보고 바로 용산으로 달려가 "엔터 더 매트릭스" 게임을 구입하려 하는 데, 허걱, 43,000원!! 눈물을 머금고 계산대에 서서 시스템 요구 사양을 보았더니, CPU 1.2G 이상, RAM 256M 이상, 비디오 카드 메모리 32M 이상. 에구구구.. 이것이 진정 블럭버스터로구나. 영화를 퍼펙트하게 이해, 감상하기 위해서는 컴퓨터까지 바꿔야 하다니.. 흑흑..

아무튼, 워쇼스키 형제, 영화도 잘 만들지만, 탁월한 사업적인 감각을 가졌다고 봐야지? ^^;

난 여주인공이 눈에 걸린다. 아무리 봐도.. 너무해. 엄마뻘이랑 연애하는 것 같아. 트리니티는 썬그라스 벗지 말기를.. (남녀를 떠나서) 윤희도 동의함. 멜로는 전혀 몰입이 안돼. 흑흑.

SF적인 관점에서는 조만간 저의 의견을 올리고, 3편을 한 번 공상해보겠슴다.

난 뭐 디게 재밌두만. 무협 팬인 내겐 무협의 허리우드 버전으로 보였는데 그게 아주 멋지더란 말씀야. 호신강기막으로 무수한 총알들을 받아내어 멈추게 하고 우수수 떨어뜨리는 장면을 보고 미국 관객들도 무협 맛을 좀 알았으려나? ^^

씨네21 읽다가 아래 구절 읽었는데 너무 웃겨서 퍼왔음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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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네오는 100여명의 에이전트 스미스와 싸우다가 결국 하늘로 날아오른다. 왜 그는 처음부터 날아가버리지 않았던 걸까.
→ 국적과 노소를 불문한 전세계의 평론가들이 이걸 궁금해했다. <롤링스톤>의 피터 트래버스는 네오가 “재미로, 시험삼아, 관객을 위해” 그랬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워쇼스키 형제가 들었으면 기분 나빠했을지도 모르겠다. 트래버스도 이건 “쉬운 대답”이라고 전제했으니 어려운 대답을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네오는 스미스가 업그레이드됐다는 사실을 깜박하고선 100명도 문제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자기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깜박? 혹은 메시아로서의 자존심이 훌쩍 도망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네오가 날아다니기만 한다면 무술수련하느라 죽도록 고생하는 다른 배우들이 반기를 들지도 모른다는 고민의 소치일 수도….

Q 그렇다면 스미스는 왜 날지 못하는가? 그는 이제 매트릭스 시스템의 일부도 아닌데.
→ 마음을 자유롭게 하지 못해서 그렇다. 프로그램의 한계다. 혹은 그에겐 모피어스 같은 사부가 없었다. 아니면 100명의 분신들을 추스르느라 바빠서.

ㅋㅋㅋ 정말 웃긴다. 근데, 정답은 아무리 생각해도 '관객을 위해'가 맞는 거 같당... ^^

저는 우선 Keymaker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거슬리더군요. 주요인물들은 전부 흑인 아니면 백인. 그들의 몸속으로 흡수된 중국무술과 일본검술. 프랑스계 프로그래머는 또 어떻고요. 맨 마지막의 배신자는 왜 히스패닉처럼 보이는거죠? 저의 선입견이겠죠. 화면은 훌륭한데, 서사는 엉망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수많은 SF를 체계없이 빌려왔다는 느낌. 스미스의 대사 '네가 나를 자유롭게 했어. 나는 새로운 존재야' 같은. 영화의 주제가 Architect의 일방적인 진술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는 것도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전체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한 예측불가능한 변수'라니. 구태의연합니다. 차라리 윈도우를 돌리기 위해 필요한 수만개의 사소한 버그라고 하지 왜. 네오와 트리니티의 사랑 이야기('저 여자에게 하듯 나에게 키스해줘요.' '당신이 부럽군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영원하지 않아요' 등등의 대사. 몸속에 손을 집어넣어 심장마사지를 하는 장면 등등)는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뭔가 달라졌어'하면서 살인기계들을 현실속에서 제압하는 네오, Architect의 의도를 어기기 위해 트리니티를 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폭풍속에 죽게하는 네오, 누군가의 대사에 의해서 그 엄청난 규모의 사이온이 멸망했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참 웃겼지만 그 얘기를 듣고도 무표정한 얼굴로 '예언은 진실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네오도 참. 3편을 위한 좀 어거지 같은 복선들도 곱게 보이진 않더군요.

정확한 대사 몰라서 미안하다... 에이... 아예 말을 말아야지.

글쎄.. 아키텍쳐의 "프로그램을 위협하는 예측불가능한 변수를 통제하기 위함"(이게 정확한 대사일 듯,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한 예측불가능한 변수가 아니라) 운운하는 것은, 결국 구원의 신화가 시스템으로부터 제공되었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건 윈도우와 같은 OS 시스템에 있는 사소한 버그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구. 결국 인류 전체의 의식과 무의식 전부를 통제할 수 있는 가상현실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인간이 가진 욕망과 그에 따른 선택은 어떤 프로그램으로도 예측이나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거지. 방법은 오직 한 가지, 그 불완전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시스템을 다시 한 번 뒤집어 엎는거지. 마치 윈도우 시스템이 치명적으로 불안하게 되버리면 하드를 포맷할 수밖에 없듯이 말이야. 즉 네오과 시온은 인간이 지닌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시스템에 미치는 예측불가능성의 피해를 집성한 존재인 거야. 시스템은 정기적으로 그걸 파괴하고(네오는 다섯 번 째 The One 이지), 다시 시온과 네오의 신화를 구축하지. format 이라는 명령어 자체도 DOS라는 OS 시스템에 속한 것이듯이, "The One" 이라는 구원의 신화 또한 시스템으로부터 예비된, format 과 같은 치명적인 명령어와 같다는 것. 하지만 필연적으로 그 명령의 선택은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에게 달렸다는 것.(시스템은 그 자신을 스스로 소멸시킬 수 없으니까..) 뭐 이 정도가 아키텍쳐가 했던 말 속에 들어 있는 의미가 아닐까.
아 참, 그리고 마지막의 "시온이 멸망했다" 운운은 내가 잘못 이해한 듯. 다시 한 번 봤더니, 기계들을 막아낼 수 있는 결정적인 방어 전략을 스미스로부터 카피당한 배신자가 방해했다는 내용이더군. "일방적인 학살"이라는 대사는 시온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방어선을 치고 있던 5대의 함선에 대한 것이었고.(그 부분에서 자막이 개판이더군. 내용의 절반도 커버를 못해주던데..) 그 방어선을 뚫고 기계들이 다시 땅을 파고 내려가기 시작한 뒤에(After that, machines started digging agian.) 그 자리에 가 봤더니, 다 죽고 한 명만 살아남아 있더라.. 뭐 그런 대사더군. 자막은 digging을 "땅을 판다"가 아니라 "무언가를 찾다"로 번역해 놓아서 이해에 혼선을 주는 것 같아. 마지막의 배신자 얼굴은 1편의 배신자 사이퍼의 얼굴과 비슷해서 웃음이 나던데.^^;
제 생각에 3편은 아마도 기계가 마지막으로 시온에 도착하기 전, 네오가 다시 한 번 시스템의 소스로 돌아가서 인류을 근원적으로 구원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뭐 이런 얘기가 아닐까 추측합니당.^^;

엥. 잠깐 글 수정하는 사이에 희준형이 그새 덧글을 달았네. 순서가 바뀌어져 버렸당. -.-;

"...(중략)... 이것이야말로 매트릭스가 오락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겠습니다. 평론가들 이상한 말 갖다붙여 철학적 고찰 운운해봐도 아이들 장난감을 보며 격세지감 느끼는거나 별반 다를거 없다 이말이죠. ( ``)" ('검돌 어록' 중에서)
나는 검돌 선생의 이 말씀이 혜안으로 영화 전체를 통찰하신 결정적 한 마디라고 생각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볼거리'를 주려는 의도에서 만든 것이라면, 다른 거 너무 고민하지 말고, '볼거리'를 맛있게 보고 즐기면 되는 거 같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