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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8-18 11:49:27 / Hit:3866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정신없이 살다 고개를 들어보면 세상은 온통 우울한 소식들로 가득하다. 불황, 실직, 투신자살, 절망... 죽어라 야근하고 뺑이치고 열심히 앞뒤좌우로 구르건만 삶은 여전히 우리를 등쳐먹는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그토록 최선을 다해 악바리처럼 살아도 왜 삶은 언제나 퍽퍽하기만 할까. 즐겁게 살기란 왜 이렇게 힘든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삶의 행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전교 1등을 하고 일류대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새벽 1시에 집에 가서 새벽 5시에 다시 회사로 출근하는 삶을 살아갈 때까지는. 그에게는 꿈 많은 소년 시절 프로야구 최하위 팀, 전혀 슈퍼하지 않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이었다는 원죄와도 같은 기억이 있다. 1할 2푼 5리의 어처구니없는 야구를 보여준 삼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그는 열심히 경쟁의 절벽을 기어 오른다. 그리고 처참한 실패. 그에게 찾아온 깨달음은 이런 것이다.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고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는다.” 모두들 ‘프로’가 되기 위해 피땀 흘려가며 삶을 탕진하고 있지만 그 피 튀기는 경쟁에서 패배한 자나 성공한 자나 “피곤하게 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느릿느릿 띄엄띄엄 살아가는 아마추어들에게 오히려 삶은 환하게 웃어준다는 것을. 진정한 인생은 모두들 슬슬 기피하거나 경멸하거나 두려워하는 어딘가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야구는 인생을 닮아 있다고 했던가. 야구에는 확실히 인생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무엇까지 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가 야구를 빌미로 소설과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을 보여준다면 박민규의 이 소설은 야구를 통해 지리멸렬한 루저들을 향해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말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에 나오는 ‘일본 야구 창세기담’과 <삼미...>의 ‘순수-절정-고갱이의 대화’ 부분, 봉간다 씨족들의 리그 이야기를 비교해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을 만큼 술술 잘 읽히며, 읽다가 절로 무릎을 치는 장면들이 속출하는 소설이다. 작가와 동년배로 80년대를 통과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에피소드들도 재미나다. 지하철 같은 곳에서 읽으려면 주위의 시선에 무감할 만큼 대범하든가 아니면 약간 긴장을 하는 게 좋겠다. 작가가 풀어놓는 농담들을 한참 실실 웃으며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에 눈물이 고이는 느낌이랄까. 이 책을 내려놓는 순간 당신은 묵직한 연민과 비애, 나아가 기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 당신이 ‘내 인생은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작이야’ 생각해오던 사람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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