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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12 23:51:16 / Hit:5783  

미네르바 현상과 'Stand Alone Complex'

  요 며칠 미네르바의 체포와 구속수사 내용을 보면서, 나는 이 현상이 'Stand Alone Complex'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Stnad Alone Complex'는 <공각기동대>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TV 시리즈에서 근미래의 가상 현실 속 인간상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개념인데, 이게 애니메이션을 위한 단순한 설정을 넘어서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인류의 행동 양식에 가져올 변화를 예견하는 이론적 힘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넷트를 통한 가상 현실이 광범위해 질수록 거기에 접속된 사람들은 보다 '개별자'가 되려는 반대급부적인 욕망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는 사이버 스페이스가 지닌 익명성이라는 본질적 특성이 인간 주체의 자기동일성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동일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 분열증적 주체는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에게 동일성을 부여할(그럼으로써 자신을 '개별자'로 만들어줄) 대상을 찾아 헤맨다. 이 동일성 추구의 막다른 방식은 바로 '모방'이다. 그런데 모방자는 모방을 통해서 자신이 오리지널이 된다고 믿게 된다(즉 오리지널과의 자기동일성을 확보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터넷이 육체성이 제거된 버츄얼 리얼리티의 공간이기 때문이며, 디지털화된 세계에서는 오리지널과 카피본에 아무런 차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화하자면 동일한 아이디, 비슷한 아이콘, 같은 계열의 상징체계를 자신의 '큰-기표'로 삼는 모든 사용자가 자신이 '개별자'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갖는다는 환상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개별자 콤플렉스'의 아주 초보적인 단계는 '플래쉬 몹'이다.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3부작이 한창이던 시절, 우리는 광화문이나 강남교보 앞에서 검은 슈트에 검은 선그라스를 쓴 사람들이 수십명씩 우르르 몰려들어 '스미스 요원'을 흉내내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해프닝을 서너차례 보았다(워쇼스키 형제는 이 오마쥬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다음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는 이 플래쉬 몹을 정치적 혁명의 방식으로 그려내기까지 했다). 그 해프닝에 참여한 사람들은 누가 처음 이 아이디어를 냈는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모이라는 지시를 했는지(즉 오리지널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이 '주인-기표'가 비워진 놀이에서 참여자는 참여한다는 행위만을 통해 놀이의 주인이 된다. 물론 이러한 플래쉬 몹은 유희의 차원을 넘어서지 않기 때문에 전적으로 무해하다. 그러나 이 '모방'을 통한 자기동일성의 획득 욕구가 유희를 넘어 존재론적인 차원으로 넘어간다면? 답은 대중의 이러한 욕망을 누가 이용하느냐에 따라 파시즘과 아나키즘이라는 양극단으로 나뉜다(못믿겠다면 히틀러의 라디오 연설과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 클럽>을 비교해서 살펴보시라).

  미네르바 사건이 왜 개별자 콤플렉스인가? 나는 이것이 모방범죄(이 현상을 범죄라고 할 수 있다면)의 연쇄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네르바'라는 아이디로 작성된 글은 지금까지 6개월 사이에 5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이 글을 현재 구속된 31세 남성이 다 썼을까? 그리고 신동아와 인터뷰한 인물 역시 그일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닥 신빙성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검찰에서도 이미 미네르바가 여러명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러명의 미네르바가 명확한 의미에서의 '공범'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여러명이 사전에 모의해서 '미네르바'라는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미네르바'라는 주인 없는 기표에 자신을 기입함으로써 스스로 미네르바가 되고자 했다는 뜻이다. 현재 구속된 그 남성에게 "당신은 미네르바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당연히 "내가 미네르바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차후로 밝혀질 제2, 제3의 미네르바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들 역시 똑같이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미네르바인가? 답은 "그들 모두가 미네르바이며 또 그들 모두가 미네르바가 아니다"이다. 그들은 '박모씨', '김모씨', '이모씨'라는 현실 세계의 개별성을 버리고 가상 공간의 '미네르바'라는 개별자에 '자기-동일화'되었기 때문이다. 개별자 콤플렉스의 무서움이 여기에 있다. 미네르바가 존재하길 원하는 사람이 있는 한, 미네르바라는 현상은 지속된다.

  그렇다면 오리지널 '미네르바'는 누구인가? 이 질문 자체가 '미네르바' 현상의 의미를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미네르바는 정말 현자일까? 그는 31세 전문대졸(아, 대한민국의 이 치졸함이여!) 무직자가 아니라 금융 자본에 대한 경험과 학식이 풍부한 재야에 은거한 50대의 고수인가?(아, 이 무협지적 상상력이라니..) '스탠드 어론 콤프렉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지리널이 우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가 비어 있다는 점이다. 즉 어떤 '한' 미네르바가 미국발 금융위기의 상세한 내용을 우연하게도 정확히 예견했고(아니, 좀 더 솔직해지자. 사실 웬만한 '경제 전문가'라면 누구나 예측했던 것 아닌가? 단지 그것을 미리 발설해서 화를 자초하고 싶지 않았을 뿐 아닌가? 증권분석가나 펀드매니저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러올 재앙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들은 단지 그것을 '일반인들'에게 감춤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좀 더 오래 유지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최초의 미네르바가 금융권 인사라면 그는 일종의 '내부고발자'인 셈이다.), 그 우연성이 미네르바라는 한 아이디에 '인터넷 경제대통령'이라는 권위(라기보다는 집단 환상)을 부여했고, 이 '환상-기표'에 여러 네티즌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동일화시킨 것이다. 그들은 미네르바라는 동일한 개별자가 되어 리좀화된 집단 이성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최초의 미네르바가 진정 이 모든 것을 예견하는 현자라면, 그는 지금쯤 광대한 네트의 어딘가에서 조용히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진짜 미네르바는 누구인가'라는 의미없는 질문에서 벗어나, '미네르바 현상'이라는 개별자 콤플렉스가 욕망하는 바를 이해해야 한다. 미네르바라는 아이디로 쓰여진 글들의 내용을 보자. 주가 500선 붕괴. 부동산 거품 붕괴로 반토막.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환율 급등으로 인한 제2의 외환위기. 대기업만 살아남는 무한경쟁 구조조정. 그러니까 좀더 일찍 외국으로 이민이나 가자 등등. 모든 글들이 한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암울한 전망과 예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글들의 본질이 전망이나 예견이 아니라, 그렇게 됐으면 하는 욕망과 바람이라는 것이다. 웹상에서 '미네르바'라는 예언자적 권위에 자기 동일화하는 모든 네티즌이 원하는 바는, 이 대한민국 자본주의가 바닥까지 망해버려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극도로 아나키즘적인 욕망이다. 이것이 현재의 자본가 독재 정부가 미네르바를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 인물'로 규정하는 이유다. '미네르바'라는 이름은 이제 한 명의 예언적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한국식 자본주의가 바닥까지 붕괴하길 바라는(그래서 모두가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는), 경제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대다수의 집단 무의식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이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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