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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29 15:19:27 / Hit:1583  

마음이 가난한 자는 누구인가?

  예수가 산 위에서 말한 내용이라 해서 흔히 '산상수훈'으로 불리우는 말씀은 널리 알려진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로 시작한다. 이 산상수훈에는 8가지 복 받을 자가 나오는데, 그 때문에 이들을 '8복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12절까지를 인용한다(출처는 신구교파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발행된 개정판 <공동번역성서>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7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9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0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 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그런데 이 '산상수훈'이 모든 복음서에 다 나오는 것은 아니다.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복음) 중 가장 먼저 쓰여진 마가복음에는 이 내용이 없고, 마가 이후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마태와 누가복음은 그 내용이 많이 다르다. 그리고 공관복음서가 아닌 요한복음에는 산상수훈이 없다. 누가복음의 산상수훈은 어떤지 6장 20절부터 26절까지를 보자.


20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21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 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25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26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마태와 누가의 산상수훈의 가장 큰 차이점은 4가지 행복한 자들과 대비되는 4가지 불행한 자들에 대한 것이다. 이 불행한 자들의 면모는 '부요하고, 배불리 먹고, 지금 웃고 지내며, 칭찬을 받는' 사람들, 즉 현재 부와 권세와 명예를 누리는 자들이다. 누가복음의 예수는 이 기득권자들에게 명백히 말한다. 하느님의 나라가 오면 너희는 불행할 것이라고. 지금 너희가 누리고 있는 모든 부와 권세와 명예를 잃게 될 것이라고.

  일찍이 체 게바라는 예수를 두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주의자"라고 칭했다. 테리 이글튼 역시 1980년대에 "예수는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가였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예수를 사회주의자라는 틀로 가두는 것은 예수가 지닌 가능성을 제한하는 일이다. 예수의 시대에는 계급은 있었으나 계급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며, 하물며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가 근대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2000년 전에 선취한 것이 아니라, 근대의 사회주의자들이 예수의 이상을 이어받은 것이다. 어떤 면에서 맑스를 비롯한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다.

  예수는 복음서 곳곳에서 대놓고 부자들을 비판한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명언.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가 더 쉽다." 이 말은 '부자가 천국에 가기 어렵다'는 말이 아니라 '부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바늘구멍 통과하는 낙타 봤나?). 공관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 '부자청년' 에피소드는 그 문맥을 파악할 때 의미가 명확해진다. 마가복음 10장 17절부터 27절.


17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 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진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19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고 한 계명들을 너는 알고 있을 것이다."
20 그 사람이 "선생님, 그 모든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께서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시고 대견해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
22 그러나 그 사람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 갔다.
23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둘러 보시며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하고 말씀하셨다.
24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놀랐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26 제자들은 깜짝 놀라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27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똑바로 보시며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이 진실된 청년을 '대견히 여기며' 말한다. "네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이 말은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유대교의 모든 계율을 성실히 따르던 이 청년도 그 말만은 따르지 못한다. 그가 재물이 많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 자체가 계급성에 대한 탁월한 성찰이다. 부자는 재산을 지킬 수 있을 때에만 선을 행한다는 것. 다른 것은 다 내 놓아도 재물만은 다 내 놓을 수 없는 자가 바로 부자라는 것.

  우리는 예수를 따르던 자들이 어떤 계급이었던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2제자 중 여러 명이 갈릴리의 어부였고, 한 사람은 세리였으며, 시몬과 같은 이는 열혈당원(지금으로 치자면 근본주의 테러리스트)였다. 예수가 가는 곳마다 그를 따르는 군중들은 병들고 배고프고 기댈 곳 없는 이들이었다. 오죽하면 '오병이어' 에피소드에서는 성인 남자만도 5천명인 군중이 먹을 거리 하나 없었다고 하지 않는가. 예수가 '긍휼'히 여긴 자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대형 교회들은 예수의 말을 교묘히 비틀어 부자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바로 26장과 27장. 제자들이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말에 "하느님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답. 교회는 이 말씀 속 하느님의 자리에 슬그머니 '교회'를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자, 당신이 부자이지만 천국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건 교회에 나와서 하느님을 믿는 일이다. 교회에 헌금하면 천국의 곳간에 당신의 재물이 쌓인다. 사람은 못하지만 하느님만이(즉 교회만이) 부자인 당신을 천국으로 보낼 수 있다. 그러니까 하느님=예수=교회(그 중에서도 부자들 많이 다니는 대형 교회) 믿고 천국 가라.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비단 한국의 대형 교회뿐만이 아니다. 목회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의도적으로 오독하는 일은 기독교 역사의 처음 시작부터였다. 그 일례가 바로 '마음이 가난한 자'라는 구절이다. 아니, 가난하면 가난한 자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누구인가? 누가복음의 산상수훈 첫구절은 명백히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은 그들의 것이라"다. 그리고 가난하지 않은 기득권 세력에게 "너희는 모두 불행할 것이다"고 말한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저주는 쏙 빼고, 그나마 '가난한 자들이 행복하다'는 말에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슬그머니 한 글자 넣는다. 이 오독의 의도는 부자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는 데 있다. "아, 나는 몸은 부유한데, 마음이 가난해. 세상적으로(요즘 이 말 개신교 목사들이 참 많이 쓰더라. 문법적으로도 맞지 않는 말인데..) 성공했지만 어딘지 허전하고 공허해. 나 같이 몸은 부유한데 마음이 가난한 삶을 위해 기독교가 있는 거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차이를 두고 어떤 신학자들은 누가복음은 유대 지역을 중심으로 한 교회공동체에서 쓰였기 때문에 더 민중적이고, 마태복음은 헬라문화권(그리스-로마 지역)을 중심으로 한 교회공동체에서 쓰였기 때문에 기득권 중심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어찌됐든 마태복음을 성서로 삼았던 초기 기독교공동체가 다른 공동체보다 부자들을 더 많이 상대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예수의 메세지는 명확하다. 지금의 세상은 부자가 행복하고 가난한 자가 불행한 세상이지만,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면 가난한 자가 행복하고 부자는 불행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게 혁명이 아니면 대체 뭐가 혁명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마음이 가난한 자'란 명백한 허상이고 변명이다. 니체가 200년 전에 간파했듯이, 기독교는 2000년에 걸친 르상티망(원한)의 종교다. 그러나 2000년 전 예수가 가르쳤던 것은 '르상티망'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그것도 가난하고 핍박받고 불행한 자들에 대한 애끊는 사랑. 그 사랑을 원한으로 바꾸어 놓은 자들은, 니체가 <반그리스도>에서 말한 것처럼 사도 바울 이후의 기독교(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쪽 모두)의 여러 사제들과 목회자들이었다. 언젠가 김규항 선생이 말한 대로, 예수는 2000년 동안 오해받아 온 고독한 갈릴리 청년이다. 그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따르기 위해, 우리는 기독교가 2000년 동안 만들어 온 모든 교리를 그 바닥부터 의심해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마음이 가난한 자'와 '물리적으로 가난한 자'의 차이가 명확해지고, 그럼으로써 (그저 교회에 나가는 자가 아닌) 예수를 따르는 자라면 누구를 사랑해야하는가라는 가치 판단이 명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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