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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엘리베이터나 출입구 입구에서 아래층 남자와 마주치고는 하는데 별로 달갑지 않은 눈치다. 나와 한 번 말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에 살기 시작했을 때 아래층 여자는 임신 중이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매우 뚱뚱해서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임신 중이라 신경이 매우 예민했던 모양이다. 위층에서 우리가 내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나도, 아내도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편이라서 아래층 여자가 남편을 올려 보낼 때마다 의아한 마음이었다. 아래층 남자는 오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임신 중인 아내의 성화에 비위를 맞추려고 어쩔 수 없이 초인종을 누르는 듯 했다.
일단 나도, 아내도 더 조용하게 생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래층 여자는 만족하지 않았다. 괜히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회를 노렸다. 아래층 남자가 초인종을 눌렀다.
“저 미안하지만 밤에 발꿈치를 들고 조심스럽게 다니시면 안 될까요? 밤에 천장에서 걸어다니는 소리가…….”
“싫은데요?”
“예?”
기회를 노리던 나는 발꿈치를 들고 다니라는 말에 더 열 받았다. 발꿈치를 들고 다니면 그게 집이냐, 왜 우리가 당신 아내 때문에 숨죽이듯이 살아야 하느냐, 그 정도 소음이 문제가 된다면 시공사에 따져라, 귀찮으니까 이제 그만 올라와라…… 아래층 남자는 꽤 열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화도 도서관에서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을 빌리고 있는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말싸움을 시작했다. 여자는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리포트를 쓰고 있었고, 남자는 테이블 옆에 서 있었다. 안경을 쓴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 여자도 뚱뚱하다. 계속 뚱뚱한 여자가 나오니 전형성을 유도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 사실이니까. 뚱뚱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은 알아주시길.
“알았다니까요!”
곧바로 남자의 목소리.
“집어넣으세요!”
이후 반복.
“알았다니까요!!”
“집어넣으세요!!”
“알았다니까요!!!”
“집어넣으세요!!!”
도대체 무엇을 집어넣으라고 하는 것이며, 왜 여자는 알았다면서 바로 집어넣지 않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았다. 그런데 별다른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하는데, 남자가 물러났다. 그러자 여자가 마지못해 노트북 옆에 있던 빈 플라스틱 물통을 집어 의자 등받이에 걸어놓은 자신의 가방 안에 넣었다.
빈 플라스틱 물통?
빈 플라스틱 물통이 왜?
빈 플라스틱 물통이 소음을 낼 리도 없고, 애당초 자리를 차지할 크기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전히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말싸움을 하고도 흥분해서 여기에서 밖으로 나가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는지 남자와 여자는 얼굴이 새빨갛게 된 채 각자의 일을 열중하는 척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빈 플라스틱 물통에 어떤 사연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아래층 여자는 아들을 낳았다. 아래층 여자는 나를 볼 때마다 방글방글 웃으며 유모차에 태운 아들 자랑과 함께 꼭 사과를 한다.
“우리 아기예요. 전에 죄송했어요. 제가 그때는 예민해서…….”
나는 절대 아기를 쳐다보거나 귀엽다는 식의 칭찬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말한다.
“아닙니다.”
내가 추측하기에는 아들을 낳아서 예민했던 신경이 풀린 게 아닌가 싶다. 대신 그 녀석이 태어난 이후부터 나와 아내의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자정 무렵에 꼭 그 녀석이 울어대기 때문이다. 가끔은 새벽에도 운다.
물론 우리도 그전처럼 조용하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아무리 시끄럽게 굴어도 아래층 남자가 올라올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리는 없지만 나는 소음 때문에 아래층 남자가 올라온다면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와 아내도 댁의 아기 때문에 잠을 못 자거든요?”
물론 거짓말이다. 아내는 좀 거슬리는 모양이고, 나도 가끔은 거슬리지만, 아내는 이내 잠들고, 나는 빈 플라스틱 물통 따위를 생각하기에 바쁘다.
빈 플라스틱 물통이 왜?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과 가방에 집어넣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남자가 집어넣으라고 했던 것이 빈 플라스틱 물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노트북을 제외하면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은 빈 플라스틱 물통뿐이었다. 그리고 그 테이블은 노트북 사용자들을 위한 자리였다. 아, 그렇다면…….
남자는 테이블과 노트북을 대신해서 빈 플라스틱 물통에게 말한 것이다.
“여긴 노트북용 자리거든? 그만 가방 속으로 꺼져 줄래?”
상당히 텃새가 심한 테이블과 노트북인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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