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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6-21 11:43:03 / Hit:1465  

<스크린> 7월호 '박찬욱 감독 특집' 원고

두 개의 <올드보이>



  작가는 집을 가지고 있다. 그는 터를 파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바르고 지붕을 만든다. 골격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집에 어울리는 벽지를 바르고 타일을 붙이고 조명을 달고 커튼을 달고 특정한 가구들을 특정한 위치에 배치한다. 아직 끝이 아니다. 작가가 직접 그 속에 들어가 살며 다른 사람들을 초대해서 식사도 함께 하고 얘기를 나눌 때야 비로소 작가가 공들여 만든 집은 완전한 의미의 집으로 탄생한다.
  만든 집이 허술해서 금방 쓰러질 것 같다면, 공간이 효율적이지 않아 살기에 불편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이유로 이상한 모양을 띠고 있다면, 우린 그것을 제대로 된 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뭔가를 만들었다고 그 사람들을 모두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집의 모든 부분이 나름의 존재이유를 가지고 하나의 거대한 전체를 이루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집을 만든 사람을 작가라고 부른다. 훌륭한 집은 실수로 지어지지 않는다. 작가가 그런 집을 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이 창조해낼 세계, 자기 집의 정교한 설계도를 머리 속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화로 된 근사한 집을 가진 사람 중의 하나가 박찬욱이다.

  <올드보이>라는 집의 기본적 건축개념은 ‘쌍’이라는 개념이다. 암컷과 수컷처럼,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삶과 죽음처럼, 표면적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서로 깊이 침투해 있어서 상대편 의미를 배제하고서는 독립적으로 완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개념이 ‘쌍’이다. <올드보이>의 쌍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쌍’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작가는 쌍의 내부에서 서로의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관계를 역전시켜 보여주기도 한다. ‘쌍’이라는 영화적 건축방식, 존재방식을 지키려는 작가의 의도는 편집적이리만치 정교하다. 모든 인물들은 쌍으로 존재하고 모든 사건들도 쌍으로 존재하며 모든 대사들 역시 쌍으로 존재한다. 영화 속에서 거울, 유리, 물, 반질반질한 바닥과 벽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거울의 법칙’이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먼저, 인물들과 인물들의 역할을 들여다보자. 오대수(최민식)-이우진(유지태) 쌍을 보자. 처음엔 이우진이 가해자이고 오대수가 피해자로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어 이들의 과거가 밝혀지면 둘 사이의 관계는 역전되어 오대수가 가해자, 이우진이 피해자였음이 드러난다. 15년 만에 풀려난 오대수는 이우진에게 복수하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과정 자체가 이우진의 복수다. 결과적으로 둘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가해자도 절대적인 피해자도 없다. 둘 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둘 다 가두는 사람인 동시에 갇히는 사람이다. 둘 다 풀어주는 사람인 동시에 풀려나는 사람이다. 둘의 얼굴이 교차편집으로 보여지고, 분할화면으로 반쪽씩 보여지는 이유도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오대수-이우진 쌍을 말하면서 이미 여러 개의 쌍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해자-피해자, 복수하는 사람-복수당하는 사람, 진실을 아는 사람-진실을 모르는 사람, 가두는 사람- 갇히는 사람, 풀어주는 사람-풀려나는 사람, 감금-해방 등이 그것이다.
  오대수-이우진 쌍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양면성이다. 오대수와 이우진은 각각 자신 속에 두 존재를 함께 가지고 있다. 그 두 존재 역시 쌍으로 존재한다. 영화의 표현을 빌리면, 순진무구한 존재-몬스터다. 이것은 선과 악의 개념이 아니다. 순진무구한 존재는 행복할 수 있지만 진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불행하다고도 할 수 있다. 몬스터는 불행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으며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행복하다고도 할 수도 있다. 이 두 존재는 오대수, 이우진 각각의 내면에서 최후까지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마지막에 오대수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최면을 통해 몬스터를 죽이려고 하지만 죽은 쪽이 어느 쪽인지는 확실치 않다. 오히려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순진무구한 쪽인 것도 같다. 순진무구한 존재-몬스터 쌍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선-악 쌍이다. 누구도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다는 사실을, 선과 악은 원래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오대수-이우진 쌍 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 쌍들에서 상대방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다. 미도는 죽은 이우진 누나, 수아의 거울 이미지다. 이들은 모두 근친상간을 저지르고, 이들은 모두 오대수-이우진 쌍의 정신적 어머니이며, 자전거, 흰 살결, 천사의 날개, 추락 등의 이미지에서 알아챌 수 있듯이 순진무구한 희생양들이다. 미세한 차이는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수아는 결국 합천댐에서 투신자살하지만 미도는 수아를 그렇게 만들었던 오대수의 혀가 제물이자 추락에서 구하는 ‘천사의 날개’가 됨으로써 살게 된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그게 정말 ‘천사의 날개’인지 또 다른 ‘악마의 손아귀’인지조차 알 수 없다. 오대수의 친구-이우진의 심복 쌍도 정확히 일치하는 이미지다.

  다음, 인물표현을 살펴보자. 인물표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의도와의 괴리’다. 오대수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수아를 ‘임신’시키고 죽게 한 사실 같은 것도 크게 보면 이 속에 포함되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한 인물 내에서 벌어지는 의도와의 괴리다. 한 인물 내에서 원래 의도-원래 의도와는 괴리된 정반대의 결과 쌍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대수는 복수를 하려는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 복수를 당한다. 이우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복수를 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복수를 한 꼴이 되어 자살한다. 또 이우진은 카메라로 누나와 자신의 행복을 찍으려 했지만 결국 누나와 자신의 비극을 찍고 말았다.
  미도 역시 오대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하지만 오대수를 더 없이 불행하게 만든다. 또 미도는 일식집에서 생선들의 운명을 결정하지만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이 이우진, 또는 운명의 도마에 올려진 생선이 된다. 따지고 보면 미도라는 이름도, 오대수가 최면암시를 받고 처음 일식집 ‘지중해’ 앞에 와서 수족관을 들여다보며 하는 돌돔에 관한 대사로 미루어, 생선이름 ‘도미’에서 온 것 같다. (돌돔은 도미의 일종이다)
  ‘의도와의 괴리’에서 벗어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수아다. 수아는 그리스신화에서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물에 빠져 죽은 나르시스다. 그녀는 과학실에서 거울을 꺼내 어린 이우진이 애무하는 자신의 아름다운 육체를 감상하는 나르시시즘을 보인다. 그녀에게 거울은 나르시스의 물이다. 같은 거울에 비친 어린 오대수의 어렴풋한 모습이 결과적으로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다. 그녀는 처음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자유의 이미지였는데 나중에 합천댐에서 투신, 새의 이미지로 죽음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영원한 것으로 만들며 스스로 완결된다. 그녀만이 완전무결하며 영화 속 모든 사건의 시작이요 끝이다. 수아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짊어진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처음부터 아무 의도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수아만이 영화 전체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사람이다. 그 참혹한 고통의 대가는 남겨진 모든 사람들에게 전가된다.

  사건을 살펴보자. 모든 사건들은 반복되며 쌍을 이룬다. 이우진이 옛날에 자신의 누나와 겪었던 아픔을 오대수에게 겪게 만든다는 점에서 영화의 전체 구조 자체가 같은 사건의 반복이며, 이우진이 겪은 비극과 오대수가 겪는 비극은 완벽한 쌍을 이룬다. 이우진이 합천댐에서 투신하려는 수아의 손을 잡고 있는 장면은 오대수가 자살하려는 남자의 넥타이를 움켜쥐고 있는 장면과 쌍을 이룬다. 오대수가 갇혀있는 첫 장면에서 군만두를 넣어주는 남자의 다리를 잡고 갇혀있는 이유를 알려달라고 사정하다 돌변해서 협박하고 다시 돌변해서 사정하는 장면은 뒷부분에서 이우진의 다리를 잡고 그대로 재현된다. 오대수가 장도리로 사설감옥 주인의 이빨을 뽑는 장면도 상황이 역전되어 다시 한 번 나타난다. 오대수가 사설감옥 속에서 보는 개미의 환상은 미도의 기억 속 지하철 개미환상으로 변주된다. 오대수가 술에 취해 파출소에 잡혀갔다가 나와 공중전화로 딸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은 나중에 이우진의 펜트하우스에서 상자를 열어보지 말라고 미도에게 울부짖으며 전화하는 장면으로 반복된다. 오대수가 사설감옥에서 보는 TV에 생선회 뜨는 장면, 도청관련 다큐멘터리, 프랑켄슈타인 등이 나오는데 이것들 역시 일식집에서 회를 뜨는 미도, 도청당하는 오대수, 자신이 몬스터가 되었다고 자각하는 오대수로 각각 반복된다. 특히 ‘보고 싶은 얼굴’을 부르는 여가수를 보며 자위하는 오대수 장면은 나중에 미도가 그 노래를 ‘섹스하고 싶다’는 신호로 부르고 호텔에서 오대수와 미도가 정사를 벌이는 장면들로 멋지게 연결된다. 

  대사와 그 속에 사용된 언어를 들여다볼 차례다. 이우진은 오대수에서 ‘왜 가두었는가가 아니라 왜 풀어줬는가’를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이 말을 통해 이우진은 왜 가두었는가-왜 풀어줬는가를 하나의 의문 쌍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왜 가두었는가’에만 집착하는 오대수에게 친절하게 ‘왜 풀어줬는가’에 무게를 실어주어 사고방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설감옥의 그림에 적혀 있었던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라는 말은 오대수가 나중에 이우진의 펜트하우스에서 보게 되는 미도의 앨범 제일 끝장에 그대로 쓰여 있다. 이우진이 말한 ‘모래알이든 바윗덩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라는 대사도 반복된다. 오대수가 풀려난 옥상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이 말하는 대사,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도 살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을 오대수는 그대로 따라하고, 그 말은 아이러니하게 오대수가 최면술사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에 쓰여서 최면술사의 마음을 움직인다. ‘자청룡’이라는 중국집의 이름도 자주색과 파란색이라는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속에서 자주색은 상자, 손수건의 무늬와 더불어 이우진을 상징하는 색으로 나타난다. 오대수가 중국집을 찾으면서 더 중요한 ‘자’자를 빼놓고 ‘청룡’이라는 이름의 중국집을 뒤진다는 설정과도 연결된다. 이우진은 ‘더 넓은 감옥은 어떠냐’고 묻는다. 감옥의 이미지 역시 반복된다. 감옥-세상이라는 더 넓은 감옥 쌍은 다시 수족관-지중해 쌍과 연결된다. 지중해는 ‘육지 가운데의 바다’라는 뜻이며 따지고 보면 모든 바다는 육지로 둘러싸여 있다. 일식집에서 기절했다 미도의 집에서 깨어난 오대수는 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감기’마저 다시 등장한다. 사설감옥 주인은 장도리로 오대수의 이빨을 뽑으려다 이우진이 보낸 돈을 받고 자리를 뜨면서 독백을 웅얼거린다. “감기가 싹 달아나는 거야...”

  소품들에 있어서도 반복적인 사용이 나타난다. 술에 취한 오대수가 파출소에서 내미는 가족사진은 나중에 이우진의 펜트하우스에서 보게 되는 앨범 첫 장에 붙어있는 사진이고, 장도리는 ‘입을 열게 하는’ 고문수단이자 ‘입을 닫게 하는’ 무기가 된다. 오대수가 이우진의 집에서 집어든 가위는 비밀이 담긴 상자를 개봉할 때도 쓰이지만, 중간에 이우진의 심복의 귀를 찔러 주인의 명령체계을 파괴하는 데도 쓰였다가, 나중엔 이 두 번의 용도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혀를 잘라 이우진에게 바침으로써 결과적으로 비밀을 묻어두고, 이우진의 명령체계를 복구하는 데도 쓰인다. 오대수는 이우진에게 자주 상자를 받는데 그 상자 속에는 잘린 손, 비밀이 들어있는 가족 앨범 등 주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물건들이 들어있다. 그런데 오대수 자신도 사설감옥에서 풀려나 아파트 꼭대기의 풀밭, 트렁크 안에서 나온다. 오대수 자체가 몬스터이고 가장 공포스러운 물건이라는 표현이다. 회상장면에서 수아가 벤치에서 읽고 있는 책은 자살한 미국 여류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이다. 이것도 나중에 수아의 자살과 연결된다. 종과 종소리도 여러 번 등장한다. 수아는 자전거 종을 울렸고, 최면술사는 최면을 걸때 종을 울렸고, 출입문에 붙은 종도 소리를 낸다. 종소리는 주로 새로운 단계로 오대수의 의식이 일깨워질 때 사용되었다. 하다못해 CD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우진이 PC방에서 오대수의 친구를 죽일 때도 CD를 부러뜨려 흉기로 사용하지만, 어린 시절 이우진이 누나가 있는 과학실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롱쇼트에서 CD 한 장이 이우진의 발바닥에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이 스치듯이 보인다.

  영화의 리듬도 빼놓을 수 없다. 카메라가 팬하며 연결쇼트로 이용된 달력이 움직이고 다시 팬하는 다음 장면으로의 우아한 장면 연결방식에서처럼 ‘부드러움/자연스러움’이 있는가 하면, 인물들이 개미만하게 보일 정도의 롱쇼트 바로 다음에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연결시키거나 씨퀀스의 맨 처음을 아무런 배경설명이나 이유에 대한 언급 없이 극적인 커트로 시작한다거나 하는 것처럼 ‘거침/폭력’도 있다. 부드러움/자연스러움-거침/폭력 쌍은 서로 대립, 화해하면서 영화의 긴장을 늦추기도 하고 조이기도 하면서 영화적 리듬 전체를 만들어나간다. 지면관계상 자세히 설명할 수 없어 안타깝다. 영화의 편집방식과 리듬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평자가 충분한 지면을 가지고 다루어줬으면 좋겠다. 미처 다 쓰지 못했지만, 이외에도 영화에 사용된 ‘쌍’들은 언급한 것들 이외에도 너무나 많고 다양하다.

  작가는 왜 ‘쌍’ 개념을 영화 속에 끌고 들어와 모든 부분에서 그토록 집요하게 적용했는가? 작가는 ‘경계’를 지우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경계는 지배의 역사와 플라톤주의가 만든 이분법의 경계이고, 흑백논리의 경계이며, 언어의 경계이다. 선-악, 아름다움-추함, 과거-현재, 부드러움-폭력, 삶-죽음 등 모든 ‘쌍’의 인위적인 경계를 이런 방식으로나마 조금 지우고 원래에 있는 현실 자체, 인간의 조건 자체를 드러내자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의 배후에 냉소나 절망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의 삶과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계 자체는 정말 무엇인가? 어떠한가? 우리는 그것이 불가해한 것들로 가득 차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올드보이>는 그런 현실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영화다. 결국 <올드보이>라는 집이 만들어낸 최고의 ‘쌍’은 현실-영화 쌍이며 거울로서의 카메라가 그 사이에 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박찬욱이라는 작가의 폭넓은 문화적 교양과 예민한 감수성, 자유로운 상상력이다.

  <올드보이>는 완결된 구조를 가진 훌륭한 저택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척박한 영화현실에서 박찬욱과 같은 작가의 탄생은 축하할 만한 일이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 영화 자체에 특별한 결점이 있다는 건 아니다. 다소 관념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감수성’에 관한 것이다. 다른 박찬욱의 영화들처럼 <올드보이> 역시 흠 잡을 데 없이 훌륭하지만 그 ‘감수성’이 아무래도 서구적인 느낌을 준다는 사실, 서구적인 상상력의 산물인 것 같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판소리 같은 것을 다루었으면 하는 게 아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작가가 태어나고 영화를 만들고 있는 한국의, 옛날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박찬욱만의 감수성이 조금 더 생생하게 표현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거울로서의 카메라를 든 작가 박찬욱이 이제 싸우고 극복해야 할 문제는 ‘원본성(오리지널리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움켜쥔 작가를 우리는 대가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의 눈앞에는 두 개의 <올드보이>가 있다. 완성된 <올드보이>와 미완의 <올드보이>가 마주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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