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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스코어 - 45, 65
어렸을 때 필자의 가문에는 이상한 규칙이 하나 있었다. 애들은 밥 먹고 나면 아버지에게 검사를 받아야 했다. 밥을 먹고 나면 아버지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웃옷을 올리고 배를 보여주는 거였다. 그러면 아버지는 눈으로 배의 부피도 가늠해보고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눌러보기도 해서 충분히 먹었다고 판단되면 합격 판정을 내렸다. 물론 밥을 많이 먹었을 때는 자랑스럽게 배를 디밀었지만, TV 만화에 정신이 팔려 조금밖에 먹지 않았을 때는 일부러 배에다 힘을 주고 가슴을 콩닥거리며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필자가 딱 한 번 살찐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에서 5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내과수술을 했는데, 봄부터 대책 없이 살이 찌기 시작했다. 순진무식(?)했던 필자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운명의 그해 가을, 말싸움을 하다 같은 반 여자애가 폭탄발언(?)을 했다. “이 돼지야!” 충격에 휩싸인 필자는 집으로 돌아와 배를 까고 거울 앞에 서서 진지한 복부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부터 새벽에 일어나 동네를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고 몇 달 만에 문제는 해결됐다.
지난 7월 8일, 모 제과업체가 6월 27∼30일 모 포털 사이트와 공동으로 네티즌 1만2천579명(여성 7천240명, 남성 5천33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다이어트를 할 경우 본인의 희망 체중’을 묻는 질문에 여성은 45kg(43%), 남성은 65kg(40%)이 가장 많았다. 이번 주 파이널 스코어는 본인의 희망 체중, 45와 65다. 단위는 kg.
설문에 참가한 네티즌들이 주로 젊은 세대들이라 그런 영향도 있겠지만, 더 무거워도 될 거 같은데 희망 체중이 생각보다 낮은 수치다. 다이어트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지난 달 17일, 모 제약회사는 자사의 다이어트 사이트를 방문한 10~40대 네티즌 3천425명을 대상으로 다이어트 관련 스트레스 여부를 물은 결과, ‘약간 스트레스를 받는다’(52.3%)와 ‘스트레스가 심각하다’(11.7%)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64%로 집계됐으며, 전체 응답자의 28.7%는 ‘습관적으로 항상 다이어트를 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니! 스트레스가 다이어트에 얼마나 나쁜데!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생물행동학 연구팀은 학술지 '응용 사회심리학 저널' 3월호에서 여성은 스트레스에 시달린 후 지방이 많은 음식을 찾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25분 분량의 다양한 업무를 맡긴 뒤 전화벨 소리, 타자치는 소리 등 사무실 소음을 무작위로 들려주고 저지방과 지방질 간식거리를 줬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았던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던 여성들에 비해 기름진 음식을 2배나 선호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스트레스는 다이어트에 나쁠 뿐만 아니라 모든 병의 근원이다.
TV나 영화, 광고 등이 없었던 시절엔 외모와 관련된 사람들의 콤플렉스가 현재보다 훨씬 적었다는 사실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확실히 외모와 관련된 콤플렉스나 스트레스는 대중매체의 영향이 크다. 대중매체들은 예쁘고 날씬한 사람들만 보여주면서 끊임없이 ‘저렇게 되지 않으면 따돌림 받을지 몰라’하는 공포를 유발시킨다. 그런 것들에게서 잠시 놓여나서 자신을 하나의 물체로 바라보라. 당신은 아름답다. 뚱뚱하건 말랐건, 흑인종이건 백인종이건 황인종이건, 이슬람이건 크리스천이건, 사람은 모두 아름답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펄프픽션>에서 복서로 나온 브루스 윌리스의 애인은 ‘똥배가 나왔으면 좋겠다. 똥배는 섹시하다’고 말한다. 뚱보 여자들만 등장해서 자신 있게 자신들의 뱃살을 흔들며 춤추는 공연이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뚱뚱한 아이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미카엘 올리비에의 '뚱보, 내 인생'이라는 감동적인 정신적 비만클리닉 소설도 있다.
비만이 건강을 해칠 정도이거나 운동이 부족한 거라면 다이어트를 해야겠지만 지나치게 외모에 스트레스 받고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는 건 건강에 나쁘다. 진정한 ‘웰빙’은 자신을 긍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배를 까고 거울 앞에 서라. 보라, 당신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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