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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스코어 - 21
연일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더위를 잊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오싹한 공포영화를 보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잘 만든 공포영화는 사람들에게 공포뿐만 아니라 일종의 짜릿함을 준다. 언젠가 ‘공포영화 공포’가 있는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마치 연쇄살인범을 쳐다보듯이 필자를 빤히 쳐다봤다. 잔혹한 장면에서 짜릿함을 느끼는 심리를 설명하려다 그럴수록 수렁(?)에 빠져들 것 같아 그만뒀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연쇄살인 용의자 유영철이 붙잡힌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이다. 친구야, 개인차는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 속에 폭력성을 가지고 있고 죽음에 대해 공포와 매력을 동시에 느낀단다. 그렇다고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줘. 난 네가 무서워.
유영철이 붙잡혀서 다행이다.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살인만 21건이다. 이번 주 파이널 스코어다. 유영철 사건은 전혀 짜릿하지 않다. 불쾌하다. 공포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조금이라도 어떤 위험이 현실화될 가능이 있다면 짜릿함이 아니라 공포 자체와 불쾌감을 느낀다.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이라면 번지점프 점프대에 섰을 때 어떤 화려한(?) 포즈를 취할지 생각하는 여유까지 부리면서 짜릿함과 재미를 느끼겠지만, 발목을 묶은 줄이 부실하다면 사정은 다르다.
필자는 동의하지 않지만, 범죄학에서는 여러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연쇄살인과 연속살인으로 나눈다. 이 분류를 포함해서 연쇄살인범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는 미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대국이고 선진국이다. 미국에 연쇄살인범이 많기 때문이다. 전 세계 연쇄살인마의 80% 가까이가 미국에 살고 있다고 하니, 연쇄살인마의 본고장이라 할 만 하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연구에 의하면, 보통 사람이 살인을 하면 상당한 흥분상태에 있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흥분상태에서 살인을 계속하는 경우는 연속살인으로, 이러한 흥분상태가 진정된 후 다시 살인을 하는 경우는 연쇄살인으로 분류한다. 유영철의 경우 심리적 안정기를 거치면서 반복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연쇄살인으로 볼 수 있다.
연쇄살인범들은 분명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사회의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연쇄살인도 사회적 병리현상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심각한 빈부격차. 안 그래도 심각했는데,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그나마 있던 중산층이 붕괴되고 빈민층이 급속히 늘고 있다. 경기회복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도 심각하게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는 복지정책의 부재.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는 OECD 가입 국가들 중에서도 최하위권이다. 빈민층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해주는 복지정책이 시급하다. 셋째는 매매춘문제.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매매춘을 하는 여성은 1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체 가임여성(15~45세)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매매춘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젠 완전히 하나의 문화,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를 잡아서 어찌 손대기도 막막한 실정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대한민국을 ‘매매춘공화국’으로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세 가지 문제 모두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여러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연쇄살인과 연속살인으로 나누는 FBI의 분류는 틀렸다. 가장 끔찍하고 비도덕적인 살인범죄를 빼놓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전쟁이다. 이 부문에서도 미국은 단연 앞서가고 있으니 역시 살인의 강대국, 선진국은 다르다. 연쇄살인범이 아무리 부지런히(?) 사람을 죽여도 전쟁에서 죽는 사람들의 숫자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어떤 연쇄살인범도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트집 잡아 전쟁을 일으키고 죄 없는 이라크 사람들을 무수히 죽인 미국과 부시정권보다 비도덕적이지는 않다. 지금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야말로 생생한 공포 자체이고, 따라서 이번 여름 극장가 최고의 공포영화는 추악한 이라크전쟁을 파헤친 다큐멘터리 <화씨 9/11>이다. 이 영화 역시 무섭지만 짜릿하진 않다.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유나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그런 추악한 전장에 젊은이들을 보내야하는 우리들의 심정은 참담할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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