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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자료로 쓴 영화의 스틸사진 세 장이 있습니다.
같이 올리려고 했는데 태그가 먹지 않는군요.
반박귀진(사진방)에 따로 올려놨으니 창을 하나 더 열어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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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컬 시네마>
관능적인 미장센의 육체
<6월의 뱀>은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던 중산층 부부 린코와 시게히코가 암으로 죽어가는 이구치를 만나게 되면서 사랑과 삶의 육체성을 회복하게 된다는 간단하고 계몽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는 풍만하다. <6월의 뱀>이 가진, 꿈틀거리는 육체 때문이다. 특히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에게서 영향 받은 듯한 미장센은 정교하고 아름답다.
미장센(mise-en-scene)은 불어로 ‘장면 안에 (뭔가를) 배치한다’는 뜻이며 원래 무대의 시각적 연출을 가리키던 연극용어였다. 영화로 넘어오면서 미장센은 컷(cut) 안에서 화면의 종합적인 시각적 연출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세트, 로케이션, 미술, 의상, 분장, 배우의 동선, 조명, 프레이밍(framing, 피사체를 화면 안에 넣는 방법), 공간의 깊이감, 카메라의 움직임 등이 모두 미장센 안에 포함되며, 편집을 통해 정서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몽타주(montage)와 구별된다. ‘시간’이라는 요소가 배제된다면 미장센은 미술적인 영역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훌륭한 미장센을 만들기 위해선 감독과 각 분야 전문가들의 미술적 안목이 필요하다.
<6월의 뱀>은 흑백영상 위에 창백한 푸른색을 입힌 단색조 영화다. 그러므로 미장센에서 ‘색’이라는 요소는 배제된다. <6월의 뱀>의 뛰어난 미장센은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가 건축학적 방법이다. 스틸1을 보면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딱딱한 직선들과 그로 인해 차갑게 분할된 공간 안에 시게히코를 가두어, 린코를 엿보고 있는 그의 폐쇄적인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장면뿐만 아니라 감독은 편집적으로 영화 전체를 무수한 직선들로 덮어버렸다. 모던한 분위기의 린코와 시게히코의 집, 두 사람의 사무실, 두 사람이 가는 화장실, 지하철역, 백화점, 상점 등은 모두 직선들의 집단서식지다. 건물, 가구, 블라인드, 계단, 타일도 모두 직선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등장하는 빗줄기도 직선이고 심지어 시게히코가 입고 있는 것도 줄무늬 옷이다. 따지고 보면, 현대의 도시는 수 없이 많은 직선들로 이루어져 있고 감독은 그것들을 선택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직선들로 가득 찬 화면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려고 한 것은 갇혀있는 현대인의 심리와 그 결과인 답답함, 폐쇄공포다.
불안정한 시야와 조명을 이용한 미장센도 탁월하다. 스틸2는 린코가 거실에서 이구치와 통화하는 장면인데,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장면 중 하나다. 밖엔 비가 내리고 있고 키 라이트(key light, 주된 조명)는 프레임 밖 창을 통해 들어온다. 관엽식물 잎들의 기괴한 실루엣들이 린코의 앞에서 흔들리며 시야를 방해한다. 자세히 보면 식물들은 각각 린코가 앉아있는 소파 앞, 동일선상, 뒤에 거리의 차이를 두고 배치되어 있어서, 화면 왼쪽에 보이는 앞의 잎들은 초점이 맞지 않은 흐릿한 실루엣으로, 화면 오른쪽에 보이는 동일선상의 잎들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뒤의 잎들은 반 실루엣으로 보인다. 뒤쪽의 빈 벽에는 따로 조명된 빗줄기의 그림자(장식적 조명)가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카메라는 무중력상태처럼 느리고 불규칙하게 떠다니며 화면의 사이즈(size, 프레임 안에 담는 피사체의 크기)와 시야를 끊임없이 바꾼다. 이런 방법은 영화 전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주로 인물들의 억눌린 원시적 욕망, 에로티시즘을 표현한다. 작가는 관객들에게 좀처럼 안정적인 시야를 확보해주지 않는다. 앞에 있는 사람, 건물의 벽, 물건, 그림자에 가려지고, 세차게 퍼붓는 빗줄기에 찢겨나간 인물들을 보여준다. 조명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로우 키(low key, 전반적으로 어두운 조명)인데다, 쉬지 않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경찰차의 경광등, 전차의 번쩍이는 불빛, 환풍기에 토막 나서 들어오는 불빛, 흘러내리는 빗줄기 때문에 얼룩이 일렁거리는 불빛 등은 불안정한 초점으로 흔들리는 들고찍기와 결합되어 시야를 어지럽힌다. 제대로 편하게 볼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관객들의 불안감과 집중은 등장인물들마저 안정적인 시야를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심리적으로 더욱 증폭된다. 린코가 안경을 벗을 때,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시게히코의 안경이 빗물과 김으로 뿌옇게 흐려졌을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
이런 스타일의 미장센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서양미술사에서 인상주의가 휩쓸고 지나간 후 그에 반발해 생겨난 것이 표현주의다. 거칠게 미술사적 맥락을 짚어보자. 르네상스 시대 이후 화가들은 과학적인 원근법 등을 이용해 자연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위해 애썼다. 세잔, 고흐, 고갱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런 방식이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게 아니라 ‘배워서 아는 것’을 그리는 인습이라고 비판하며, 순간적이고 감감각적인 인상을 그리는 것이 가장 사실에 가깝게 그리는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표현주의는 그런 ‘감각적 인상’에 대한 회의로부터 출발했다. 그들은 사물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또 심리적, 정서적 조건에 따라 무수한 감각적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인상주의자들을 비판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 느낌을 중심으로 사물의 선, 형태, 색을 결정하는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에드바르드 뭉크의 <비명>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표현주의는 이후 칸딘스키를 거쳐 가면서 원래의 선, 형태, 색을 완전히 무시하는 현대 비구상미술로 건너가게 된다. 건축에서도 표현주의는 독립적으로 발전한다. 표현주의는 독일에서 가장 화려한 꽃을 피워, 나찌가 집권해서 현대적 예술이 금지되기 전까지,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지속되는데, 이는 1차대전 패전 이후 독일의 불안정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구태여 미술사까지 짚어본 이유는 표현주의 영화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표현주의의 문제의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정부의 지원을 받아 1917년에 기존의 제작사들과 극장들을 통합해서 우파(Universum Film A. G.) 스튜디오가 설립되면서 표현주의의 세례를 받은, 재능 있는 극작가, 건축가, 화가들이 영화판에 모여들게 되고, 본격적으로 표현주의 영화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너무나도 유명한 로버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이다.
표현주의 영화들은 주로 인간의 어둡고 이해할 수 없고 기괴한 부분을 그렸으며, 영화적 기법 면에서 가장 중요시된 것이 바로 미장센이었다. 표현주의 영화들의 세트 전체가 거대한 미술작품이었다. 그들은 세트의 건물과 길들조차 있는 그대로 만들지 않았고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에 맞게 비틀고 찌그러뜨리고 뾰족하게 만들고 기울였다. 장식적, 추상적 조명, 얼룩진 부분조명 등 조명 분야에서도 창조적인 시도가 행해졌고 카메라의 움직임도 좀 더 주관적인 자유를 얻었다. 표현주의 영화들은 100년 남짓한 세계영화사에서 가장 예술적인 미장센을 만들었고 가장 극한까지 미장센을 실험한 영화들이라고 할 만하다.
<6월의 뱀>은 그리고 있는 세계에 있어서나, 미장센의 특징에 있어서나 표현주의 영화들을 닮아있다. 시게히코가 납치됐다가 풀려난 공터장면인 스틸3도 건축적인 구도를 이용한 표현에 있어서나 조명에 있어서나 표현주의 영화의 한 장면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감독 츠카모토 신야에게 중요한 것은 리얼리티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내려는 세계의 느낌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일인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나치다 싶게 순진(?)하고 단순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6월의 뱀>이 독특한 재미와 영화적 의미를 가지는 것은 바로 그런 작가적 열망이 만들어낸 표현주의적이고 관능적인 미장센 때문이다.
내면에 귀 기울이면 들린다. 당신의 목소리다. “내가 진정 원하는 건 뭐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려는 게, 보여주려는 게 뭐야? 내 몸뚱이로, 내 삶으로 증명하고 싶은 게 도대체 뭐야?” 당신의 목소리를, 생각을 잠재우고 당신을 지배하는 노랫소리도 들린다. 장마철 폭우처럼 가차 없이 쏟아져 당신 발길이 닿는 모든 길들을 흘러 다니는 그 리듬에 달콤하게 몸을 맡길 것인가, 당신을 그려 보여주기 위해 고통과 불확실의 공포 속에 기꺼이 몸을 밀어 넣을 것인가? *
Download : [스틸1-2-3.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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