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장] 강금실에 대한 폭력을 멈춰라
<한겨레> 김정란 교수 글 '여성의 이름으로'에 대한 반론
권오재(vacsoj) 기자
요즈음 '강금실'이란 이름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바로 강금실 변호사의 서울시장 출마여부에 대한 관심이다. 관심의 이유는 그가 서울시장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고, 이에 발맞춰 이번 지방선거의 참패가 확정적인 것으로 보이는 여당의 집요한 출마권유에 있다.
언론도 이에 발맞추어 강금실 변호사의 서울시장 출마여부를 이번 지방선거의 관전 포인트로 지목하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도 '함께 만드는 뉴스'라는 새로운 기사형식까지 선보이며 강금실 변호사의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물어 많은 네티즌들의 의견이 올라온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들은 저마다 일리가 있고, 이해가 가능했다. 그러나 강금실 변호사의 출마를 원하는 의견들 중에는 불편함을 숨길 수 없었던 글들이 있었다. '위기의 참여정부를 위해', '한나라당에 서울시장 자리가 가면 안돼서'와 같은, 그의 희생으로 역사를 살리자는 '구국의 결단'을 요구하는 글들이었다.
이 불편함에 기름을 끼얹고 불까지 지른 글은 1월 27일자 <한겨레신문> '책과 지성' 섹션에 실린 김정란 교수의 '여성의 이름으로'>였다.
김 교수는 생물학적 여성일 뿐 정치적으로 남성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여성정치인으로서 지지할 수 없음을 밝히며, 무늬만 여성이 아닌 여성으로서의 철학을 가진 강금실 변호사를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명실상부한 여성 정치인을 가져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며 강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대로 무난하게 읽어나가던 글은 말미에 이르러 매우 폭력적으로 변했다.
<강 전 장관은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행복은 아마도 자유를 말하는 것이리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언행을 통해 미루어 보건대, 그는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자유를 속박하는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상당 부분 자유를 유보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그의 결심으로 인해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해 줄 수는 없을까? 그와 함께 공동체가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잠깐 동안만 그 자유를 유보해 줄 수는 없을까? 나중에 좀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도 명실상부한 여성정치인을 가지고 싶고 그런 정치인으로 강금실 변호사를 1순위로 마음에 두고 있는 국민이다. 그러나 김정란 교수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는 '서울시장 출마 강요'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글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여성주의자에게서 여성정치인의 탄생을 고대하는 내용이나, 이를 매우 남성적으로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태까지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해야 하고,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아름다운 것으로 미화시킨 시절을 살아왔다. 경제개발을 위해 참으라는 대의명분 속에 말도 안 되는 노동조건 속에서 혹사당한 노동자와, 파이를 좀더 키운 다음에 나눠먹자는 '입발림'에 수십 년째 속고 있는 서민들, 좀더 좋은 대학과 직장에 갈 때까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참으라고 교육받았고 교육받고 있는 학생들, 무엇보다 집안과 '남'동생과 자식들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많은 누이들과 어머니들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김정란 교수는 이런 역사를 누구보다 비판하며, 박정희를 증오하면서도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강금실 변호사의 서울시장 출마를 강요하고 있다. 강요를 넘어서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너의 행복을 유보하고 포기하라'며 협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 남성적 요구에 섬뜩하기만 하다.
역사를 위한,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과 결단은 전적으로 사명감에 의해 자발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가 자신의 희생과 결단을 행복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해 자발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결심이 서야 하는 것이다.
개인이 그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지 않고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어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그뿐이며, 공동체는 그것을 인정하고 지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자연스럽게 개인의 선택을 저지하고, 공동체의 이름으로 개인의 인생을 좌지우지 한다면 그것은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행복에도 악영향을 줄 뿐이다.
김 교수가 박근혜 100명과도 안 바꾸겠다는 전태일은 그 자신의 자각과 결정으로 노동법을 공부하고, 주위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몸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의 선택이 곧 그의 행복이었고, 그 자발적 선택은 우리에게 지금도 기억되고 고귀하게 전수되고 있다. 그렇다고 먹고살기에 바빠 그 길을 선택하지 못했던 많은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을 우리가 비난할 수는 없다.
난 김 교수가 강금실 변호사에 대한 폭력을 멈추었으면 좋겠다. 나도 '강금실 서울시장'을 생각할 때면 설레는 강금실 지지자이나, 그것이 강금실의 불행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에는 반대한다. 강금실의 불행으로 공동체의 행복을 만들 수도 없거니와 만들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라는 말도 안되는 폭력으로 공동체의 행복을 얻겠다는 생각은 김 교수가 그토록 증오하는 박정희 시대의 레퍼토리 아닌가? 이러한 남성적 욕구에서 탄생한 권력이 어떻게 아름답고 고귀한 여성적 감수성으로 사회를 다르게 경영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불행을 감수하라는 말은 매우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산 사람은 언제나 불행한 경우가 많다. 어린이가 읽는 동화이든, 어른들이 보는 '이것이 인생이다' 류의 프로그램이든 모두들 먹고 살만큼만 돈을 벌려다가 그 맛을 알아 인생을 헛되이 살았던 많은 경우들로 우리에게 교훈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행복이 곧 내일의 행복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 행복해야 하며 날마다 그런 삶을 누릴 자유가 있다. 그리고 그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선택할 권리와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우리는 강금실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임을 알아야 한다. 그가 서울시장을 하든, 변호사를 하드, 아니면 평생 살풀이춤을 추는 춤꾼으로 살던 그가 행복으로 선택하는 것이 공동체의 행복이 될 것이다.
강금실의 불행으로 우리가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토록 우리가 극복하고자 하는 국가주도 경제개발시대 사상의 동일한 수제자가 되고자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바로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선진한국을 이유로 수많은 난자와 배아를 죽였다가 후회하고 자숙하고 있는 중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강금실은 현재 변호사이다. 그는 자유로운 자영업자인 것이다. 그 인생을 대중에게 저당 잡혀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데 김정란 교수는 강금실 변호사를 자꾸만 전 장관이라고 부르고 있다.
강금실은 법무부장관으로서 행복했을 것이고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물러나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을 때 깨끗하게 물러났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강 변호사를 과거에 옭아매고, 지금 행복하지 못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정란 교수는 여성의 이름으로 여성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강금실 변호사는 지금 서울시장 출마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라고 한다. 어떤 결정을 하든지, 그것이 강금실 변호사의 행복으로 선택하는 결정이기를 바란다.
|
관련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