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찍느냐, 마느냐?" 이것은 길을 걸으며 사진기자가 늘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다. 사진을 못 찍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공포가 있다. 사진을 찍으면 대상이 거칠게 나오리라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부두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백인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 순간 제국주의의 상징이 되며,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의 표적이 된다.
윤리적인 이유로도 망설인다. 예컨대 처형 장면을 찍는 것. 그 사진으로 압제정권을 고발하려는 의도가 아닌 한.
사진을 못 찍는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당신이 사진기자라면 데스크는 어떤 이유도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것이다.
몇 해전 나는 알프스 원정에 나섰다. 그랑소라스 남벽을 오를 생각이었다. 가장 손쉬운 코스였다. 우리가 밤을 보내기로 한 산장에 당도하니, 방금 북벽에서 내려온 다른 원정대가 와 있었다. 정상을 불과 몇 미터 남기고 발이 묶여 밤새 푹풍설에 시달렸다고 한다. 몇 사람은 지독한 동상에 걸려 있었다. 엄청난 시련을 겪은 탓으로 하나 같이 초췌헤 있었다.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될 수 있는 사진이 내 눈 앞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카메라를 꺼내지조차 않았다. 부도덕한 일이었다. 부상자를 등에 업고 후송하는 일이 더 급했다(당시엔 헬리콥터가 없었다).
최근에 나는 허리 수술을 받아 병원에 2주일 동안 있었다(그 무거운 카메라, 렌즈, 필름을 지고 다니려니 견뎌내질 못했는지!).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어야 했다. 사진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병실의 크기, 불쌍한 동료 환자들(나는 두개골 및 척추 이상 환자들의 신경외과 병실에 있었다), 새하얀 복도, 새하얀 천장, 사방이 너무 하얘서 느껴지는 고통, "사진은 이걸 보여줄 수 있을 거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내가 양쪽의 입장 모두가 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랫동안 세계보건기구의 일을 해오면서 나는 아픈 사람, 다친 사람, 수술 받은 사람의 사진을 수없이 찍었다. 이번에는 그 사람들 편에 서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필름이 아니라 나의 기억 속에 그 체험을 뚜렷이 새기기 위해.
- 존 버거·장 모르,"말하기의 다른 방법"에서
|
관련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