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집회에서 겪은 일>
여성주의 희망의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하고 마지막 지역인 서울로 올라갔을 때
미군 장갑차 사건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어간 고 신효순, 심미순의 49제에 참가했다
집회에서 민족운동을 하신다는 어떤 어르신이 나오셔서 발언하는 순간
여성주의 희망에 참가했던 여성주의자 친구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치떨림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강간하려면 너희 땅에 가서 하라"는 반여성적 발언에,
"깜둥이 새끼들 너희 땅에 가서 일하라"는 인종차별적, 이주노동자 비하발언,
한 수 더떠 "병신 새끼들"이란 장애차별적 발언...
계속되는 폭언 가운데 기지촌 현장활동에서 만났던 동두천 기지촌의 언니들과
머리가 노랐고, 피부가 까매도, 나도 한국사람이라고 얘기하던 언니들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다음날 기지촌 언니들의 새움터 전시회에 찾아갔을 때,
** 언니는 아래층의 멕시코 사진전으로 나를 끌고 가 사진 하나하나를 보여주며,
굶주림에 빼마른 아이들을 가르켜,
"얼마나 불쌍해. 애들이 무슨 죄가 있어. 피부색이 다르고, 국가가 다를 뿐이지... 너무 마음이 아파" 라고 했다.
<우리는 좀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소수자의 관점이라는 것...
나는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의 생활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장애인의 문제를 다 이해할 수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장애인주의라고 생각하고,
여성주의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얼마전 430 메이데이 문화제에서 "노동형제"라는 발언을 되풀이하는 한 공연팀에
여성행동위가 이의제기하자 주위의 많은 남성 동지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야유를 보내
참가했던 동지들을 공허하게했다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노동형제"라는 말 한마디 "노동자 동지"로 고치는 건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여성주의자들을 향해 예민하다, 그것 같고 뭘! 이라한다.
또 다른 주체로 열렸던 메이데이 430문화제에서 발언을 한 동지가
무슨 일이 걸림돌이 된다는 표현으로 "장애"라는 표현을 쓰고 나서
이후 인터넷을 통해 "장애"라는 표현을 "방해", "걸림돌"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 장애차별적 발언이였음을 스스로 사과하고 수정했다.
나는 같은 날 부산대에서 열린 영남 430에 참가했다.
사회자가 "더러운 전쟁"이라는 구호를 했고
"더러운"이란 표현이 빈민활동을 하는 동지에 의해 수정요구받은 적이 있기에
나는 사회자를 찾아가 설명하고 "추악한"이라는 표현을 제안했고
사회자는 즉각 무대에서 사과를 표명했다.
불쾌하게 내 몸을 스치는 손을 두고 내가 불쾌감을 표명했을 때
"괜찮아 이것 같고 뭘"이라는 사람이 있고 (내 몸인데 왜 지가 괜찮다는 건지)
"불쾌하게 할 의도는 아니였는데, 미안해" 라고 수정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곳곳에서 우리가 좀 더 예민해져야한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내가 뱉은 한마디한마디가 사회적 편견에 기대어 누군가를 상처입힐 수 있다면...
빈민운동을 하는 동지의 이의제기를 보고
총여 내부에서도 더러운 전쟁이라고 쓴 현수막에 대해 반성하고 현수막을 철거한 적이 있다.
미군장갑차 살인사건의 처참한 장면을 두고 고인을 두 번 살해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전쟁 반대를 끔찍한 사진들로 선전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다.
처음엔 핵으로 인해 끔직한 기형이 된 사진을 선전용으로 사용하며 찝찝해했지만,
지금은 그 아이들이 밝게 웃으며 재활하는 과정을 많이 선전한다는 환경운동가의 얘기나
이라크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평범한 이라크 사람들을 보여주는 선전방식을 채택한 반전단체에 공감을 한다.
끔찍함, 처참함 아니라도 반전반핵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선정적인 선전방식에도 끔찍함 외엔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흉칙하게 보여지고 인식되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자존감을 잃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또한 반전캠페인 때 사용한 열화우라늄탄에 감염된
아이들의 "끔찍한" 사진들로만 점철된 선전방식에 대해 내부평가를 통해 반성했다.
<당신이 만약 부당하게 살해당했다면, 얼마나 처참하게 살해당했는지 당신의 알몸으로 증명하라?!>
금이 언니의 포스터에 대해 총여학생회에서 비판한 지점은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성명서를 인용해보자.
[고인에 대해 무자비한 성폭행과 살인을 한 미군의 시각과 고인의 몸을
민족 주권의 상실로 상징화하기 위해 고인의 몸을 폭력적으로 드러내는 주체들의 시각은 과연 어떻게 다른가?
보는 사람들의감정을 흥분시키고 반미감정을 일으키기 위해
여성의 알몸사진을 사용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폭력임을 명확히 하고
향후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선정적인 사진을 통해 분노를 모아내는 것 이전에 성매매 여성의
고통스런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고,
또한 여성의 몸을 대상화시키는 선전방식을 일체 중단해야 할 것이다.]
여성의 몸을 대상화시키는 선전방식이 그 하나이며, 윤금이 씨를 민족의 순결한! 누이로
형상화시키며 여성문제를 질박했던 과거 윤금이 투쟁을 말하는 것이다.
나체로 널부러진 금이 언니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내가 음부를 드러내고 누워있는 듯 수치스러웠다.
그러한 경험을 가지는 여성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여성운동을 하지 않는 내 친구 또한 그 끔찍한 참상뒤로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적인 선전방식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나는 그러한 시선이 상업적 홍보를 이유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시키는 것과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에 의해 부당하게 살해되었다면...
내가 얼마나 처참하게 살해당했는가를 입증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고통스러운 몸을 드러내야한다면...
<조국의 순결한 누이?!>
조국의 순결한 누이들을 위해 "강간하려면 너희 땅에 가서해라"는 운동방식과
"남자는 여자의 빤스야! 전쟁이 나면 니들은 적들에게 강간당해.
그러니 차라리 너희를 보호해주는 우리에게 성적서비스나 해!"
라던 어느 마초의 사고방식이 다른 점이 뭐가있을까?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을 조국의 누이가 미군에 의해 죽고나서야
조국의 누이이다 못해 "순결한" 누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기지촌의 수많은 성매매 피해여성들은 화냥년으로 대접받고
그 언니들의 피부색 다른 아이들은 따돌림이 힘들어 학교가길 두려워한다.
금이언니가 미군이 아닌 내국인에 의해 살해당했다면 어땠을까?
군산 대명동에서, 군산 개복동에서 감금당한 채 성매매를 강요당하다
화재로 몰살당한 그 언니들과 친구들의 죽음은 개죽음 취급 당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 땅에서 종군위안부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왜 일본여성들은 아직도 종군위안부였던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까?
"여성운동에서 더 나아가 민족운동"으로 라는 표현에서
나는 여성운동에 대해 몰이해한
심지어는 여성운동을 어떤 운동의 하위로 규정하는 기만적인 태도에 가슴이 턱 막혔다.
나는 맑스주의자지만 계급해방이 여성해방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민족해방이 여성해방을 필연적으로 가져온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강간하려면 자기네 땅에서도 할 수 있다는데
식민지 조국이 아니여도 여성은 해방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여성문제보다 민족이 우선이라는데 내가 일본인 종군위안부라도
"화냥년에 민족을 배반한 년"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의 고통을 드러내지 못할 터이다.
<나는 편협한! 페미니스트다!>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커밍아웃하는 순간부터 별의별 수식어와 온갖 테러를 받아왔지만
(맑스주의자보다 페미니스트가 이 땅에서 살기 더힘들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나는 페미니스트다.
소수자의 관점은 생각하지 않고 한 운동단체의 공개적인 성명서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편협한!"이라는 말 한마디로 일축하는 태도에 가슴이 패여도
"민족의 짓밟힌 자존심과 생명을
한/낱/ 성폭행의 문제로 강간과 살인으로 축소"한다고 통탄해 마지않는 한 선배의 글에서
"한낱"으로 추락해야하는, 순결하지 못해 미안한 성매매여성의 삶과
이 땅 여성의 인권을 통감하며 나 또한 개탄해마지 않는다.
우리는 민족운동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여성운동하지 말라한다.
"성폭력적인 언행을 중단해주세요"
"편협하다!"
"성폭력적인 선전방식을 중단해주세요!"
"편협하다!"
미안해서 어디 여성운동 하겠는가?
선전방식 좀 바꾸고 성매매 여성의 삶에 좀 더 마주해보라는 것이 편협하고,
성폭행과 강간이 한낱의 문제라면 이건 여성운동하는 사람으로서
상당한 자존의 위협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옹졸하고 편협한 생각, 경직된 사고, 논리가 부족한 사고는 운동에 치명적이라고
졸업생선배님이 당부하신 말을 다시 선배님 스스로가 되새겨 보시길 기대한다.
미제에 의해 살해당한 몸은 나체가 아니라면,
자본지상주의에서 여성의 나체는 나체가 아니라 이미 상품인가?
상품에는 성적수치심을 느껴도 미제에의해 살해당한 몸에는 일말의 이의제기도 있어서는 안되는 것인가?
총여의 문제제기가 민족의 문제를 "한낱" 성폭행과 강간과 살인으로 축소하고 있는 것이라면
성매매 여성의 삶과 죽음은 민족의 문제보다 우선하지 않으니
민족의 누이들이여! 여성해방을 쟁취하려거든 식민지조국 해방전선으로 일치단결하라?!
해야하는가?
나는 어떤 운동이건 서로를 종속시키거나 질박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운동은 금이언니의 나체사진이 아니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상위의 운동을 설정하고 그것에 여성운동을 종속시키려한다면
운동권내 성폭력 사건에서 보여줬던
조직보위를 우선해서 모든 책임과 고통을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에게 떠넘겼던
행태와 다를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운동이라면 나는 그러한 운동과는 결연히 단절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운동이 계급운동과 민족운동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여성운동의 상위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지위가 여성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결정지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성은 여성노동자로서 존재하며, 식민지의 여성으로서 존재하기도하고,
흑인여성으로 혹은 백인여성으로도 존재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다양한 정체성들이 다양한 억압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부장적인 노동자운동이나 몰성적인 민족운동이
여성을 억압할 때는 또한 그것과 싸워나가는 것이여야한다.
진정으로 옹졸하고 편협하지 않은 태도는
패권주의적 태도로 다른 운동을 질곡하지 않는 것이며
소수자의 목소리를 자기 잣대로 재단하거나 채택하지 않는 것이아닌가?
총여에서 낸 성명서는 포스터 한 장이 아니라 그것이 함축하고있는
지금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가부장적 시선과 태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여성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민족운동이길 바라는 동지적 요구가 아니였던가?
|
관련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