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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스코어 - 28.5
골뱅이 때문에 낸 산불 피해규모 28.5ha
지난주 파이널 스코어는 탄핵사태 때문에 필자의 원고 대신에 각계의 의견으로 대체됐다. 탄핵사태가 마감에 들어간 금요일에 터졌기 때문이었다. 필자 또한, 그런 ‘세계적인’ 뉴스를 놔두고 한가한 얘기나 한다는 건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기회에 정치권에 강력하게 촉구한다. 사고를 치려면 목요일 이전에 쳐라.
불조심의 계절이다. 이제 곧 남쪽으로부터 산수유며 개나리, 진달래의 반가운 꽃불이 타올라올 테지만, 산불만은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그 동안 애써 보존하고 키워왔던 아까운 산림들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기 때문이며, 그 경제적 손실 또한 막대하기 때문이다. 산불은 건조한 날씨를 틈타 공공의 재산인 풀과 나무들을 훔쳐가는 도둑이다.
강원도 고성군 산불사건과 관련, 30대 홍모씨가 지난 16일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홍씨는 지난 10일 오후 4시께 고성군 간성읍 금수리 야산 모노골 군용벙커 안에서 불을 피우고 골뱅이를 굽던 중, 불이 야산으로 옮아붙으면서 산림 28.5ha와 고성경찰서 차고를 태우는 등 산불원인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인 홍씨는 이날 속칭 ‘모노골’ 습지에서 술안주로 골뱅이를 잡아구우려고 나뭇잎 등을 모아 불을 피웠다고 한다. 경찰은 홍씨를 일단 귀가시키고 정신감정을 의뢰하기로 하는 등 보강수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한다. 홍씨가 그놈의 골뱅이 때문에 태운 산림의 수치, 28.5가 이번 주 파이널 스코어다. 단위는 ha(헥타르).
이렇게 건조한 계절에 야산에서 불을 피우다니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이다. 물론 소주 안주로는 골뱅이를 단연 으뜸으로 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골뱅이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건조한 계절에 비상소화대책도 없이 야산에서 불을 피우다니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이라니까! 그런 시골 자연습지에서 잡히는 골뱅이라니, 무공해일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 테고, 필자도 솔직히 맛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군침이 고인다. 그래도 그렇지, 이 건조한 계절에, 그렇게 맛있는 무공해골뱅이를 혼자서만 먹으려고 불을 피운다는 건... 몇 번 말해야 알아먹어? 정신 없는 사람이라니까!
생각해볼수록 여러 가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다. ‘군용벙커 안은 따뜻했을까?’ ‘몰래 그런 짓 하기에는 적격인 장소였을 거야’ ‘홍씨는 어떤 사람일까?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백광호처럼 생겼을까?’ 등등. 물론 산불의 피해는 막심하고, 실수라고 해도 산불 원인제공의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홍씨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참 재수도 없지.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것처럼 시골에서는 경찰이고 면장이고 서로 잘 아는 처지여서 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덮어주고 선처 받을 수도 있는 건데, 하필 경찰서 차고까지 태웠으니 경찰들도 잔뜩 열 받았을 것 아닌가? 28.5ha, 285제곱킬로미터라니, 피해규모가 너무 심각하긴 하다. 그 아까운 산림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하긴, 최근에 일어난 엄청난 불의 피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지난 금요일에 대통령 탄핵이 국회에서 의결되고 나서 온 국민의 가슴 속에선 불이 났다. 안 그래도 경기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고, 신용불량자, 청년실업자가 넘쳐나서 온 국민들의 가슴 속이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는 계절에, 밉든 곱든 국가적으로 모든 중요한 최종결정을 내려야하는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는 사상초유의 불덩어리가 날아왔으니, 국민들 가슴 속이 온전했겠는가? 모두 새까맣게 타버리고 잿더미만 남았다. 그 피해규모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어쩌겠는가? 불에 탄 재를 무공해 자연비료로 만드는 일은 국민들의 몫이다. 산불이 난 산에 어린 나무를 심듯이, 우리들 가슴에도 제대로 된, 새로운 희망을 심기 위해 노력하자. 대통령 없는 나라라고 무단횡단하거나 차선위반하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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