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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컬 시네마>
다큐멘터리 감상법과 <송환>의 감상 포인트
다큐멘터리 작업은 속성상 상업 극영화처럼 여러 명의 전문화된 인력을 활용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우선 비용이 큰 문제이고, 재정이 넉넉하다고 하더라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신속하게 이동하고 촬영을 진행하는 데에는 인원이 많은 것이 오히려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작업에서는 연출과 촬영 뿐 아니라, 녹음, 편집까지를 기본적으로 혼자서 해결하는 ‘원 맨 시스템(one man system)'이 기본이 된다.
원 맨 시스템으로 작업하는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운동선수로 치면 철인10종경기 선수다. 철인10종경기 선수가 모든 종목을 골고루 잘 해야 하듯이,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여러 가지 일을 골고루 잘 수행해야 하고, 그래서 정신없이 바쁘다. 카메라와 때에 따라 녹음기까지를 동시에 조작하면서도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무엇을 어떻게 찍을 지를 재빨리 결정해야 하고, 돌아와 찍은 분량을 분류하고 메모해야 하고,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고 편집해야 하며, 작품이 완성된 후에도 어떻게 배급, 상영할 것인가까지 고민해야 한다. 모든 과정을 순조롭게 끝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돈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힘든 일을 무슨 재미로 할까’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바로 다큐멘터리 만드는 재미다. 그렇게, 원 맨 시스템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중 하나가 <송환>이다.
<송환>은 팔팔한 ‘간첩청년’으로 남한에 내려왔다가 ‘전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30~40년씩 감옥에서 인생을 보내고 할아버지가 되어 석방된 장기수들에 관한 기록이다. 자칫 흥분하고 감정적이 되기 쉬운 소재를, 김동원 감독은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살게 된 조창손 씨를 중심으로 비교적 차분하게 그려냈다.
다큐멘터리는 ‘이미지와 사건을 기록, 재현한다’는 영화의 근본적인 성격에 가장 가까운 장르다. 이 ‘영화의 근본 성격’과 관련해서 독자들, 관객들이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바로 그 ‘성격’의 이중성이다. ‘이미지와 사건을 기록, 재현한다’는 명제는 진실이기도 하면서 거짓인 것이다. ‘어떻게’ 기록하고 재현하는가에 따라 해석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의 명제는 거짓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매체에 비해서 감상 태도가 수동적인 수밖에 없는 영화 관객들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으려는 경향이 있고, 여기에서 특정한 메시지의 전달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이 탄생한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주관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다큐멘터리는 없다. 영화를 만드는 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대 영화 연구자들과 작가들 사이에서도 영화의 ‘기록과 재현의 성격’은 표면적인 것이며, 내용상 모든 영화는 작가의 주관적 시각을 반영한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완전히 객관적인 기록과 재현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모든 영화는 어느 정도 정치적이라는 말이다. 그럼 올바른 다큐멘터리 감상법은 뭘까? 화면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비판의식을 기본으로, ‘정말 작가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뭘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크게 보면 TV뉴스나 스포츠중계도 다큐멘터리로 볼 수 있으며, 나찌 전당대회를 찍은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와 같이 정치적 선전선동을 위한 다큐멘터리도 있고, 자연다큐멘터리도 있고, ‘인간시대’ 류의 다큐멘터리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구분법보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대상을 드러내는 작가의 태도와 방식’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는 ‘대상의 일면만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 주관적 시각, 견해을 합리화하기 위해 피사체(주로 사람들)의 필요한 부분만을 보여준다. TV 휴먼다큐멘터리에서 그런 작품들이 종종 발견되는데, 도대체 거기 나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나같이 착하기만 한지 모르겠다. 그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바램과는 달리, 인간은 복잡한 감정체계와 다면적인 인격을 가진 존재다. 그런 다큐멘터리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는 그런 것들이 ‘팔리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 일반적인 도덕적 가치, 예를 들면 ‘연민’ 같은 것이 상품으로서 ‘유통’되고, 그럼으로써 그 생산과 소비의 시스템은 더욱 공고화되고, 나중에는 소비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뭔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킬만한 다큐멘터리가 없나’하고 채널을 돌려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품’ 다큐멘터리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점이 바로 <송환>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장기수’라는 대단히 정치적일 수 있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작가는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특정한 면만을 부각시켜 보여주지 않는다. 그 분들을 30년 넘게 사상과 신념을 지켜온 불굴의 투사들로 그리지도 않고, 그 분들이 주장하는 것이 모두 옳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송환>의 감상 포인트가 바로 거기에 있다. 독서할 때 행간을 살피듯, 보이는 것 안쪽의 풍경을 살펴보라. 그 곳에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장기수’ 혹은 ‘간첩’이라는 단어로 고정화시켜놓은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풍경들이 있다. 작품 전체를 통해 김동원 감독은 1인칭 내레이션으로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숨기지 않고 담담히 밝힌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감독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송환> 안쪽의 풍경에서는 때때로 그들의 아집이 드러나기도 하고, 어린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드러나기도 하고, 오랜 수형생활의 영향으로 인한 사회적 부적응이 드러나기도 하며, 각각의 개성들이 살아 움직이는 게 보이고, 조급증이나 우유부단함 같은 결점들이 드러나기도 하며, 인터뷰에서 주장하는 대의에 모순 되는 논리를 펼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카메라를 든 감독은 ‘이 장면을 찍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를 고민하다 결국 촬영을 그만두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인간적이며, 한 편의 드라마이고, 마침내 화면 위에서 살아있는 인간의 온기가 되어 관객들의 가슴에 스며든다.
대규모 촬영 스태프를 이끌고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었을까? 기본적으로 원 맨 시스템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카메라에 대한 피사체의 긴장감이 없어야만 가능한 일이고, 작가와 피사체 사이의 인간적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바로 피사체와 자신의 내면에 접근하는 감독의 겸손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이다. <송환>을 통해 카메라는 ‘눈만 달린 괴물’에서 자신의 도덕과 윤리를 고민하는 ‘인격체’로 거듭난다.
그렇다면 무엇이 <송환>의 단점이란 말인가? 영화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소통을 위한 매체라면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현재의 시스템에서 그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위에서 언급했던 ‘상품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송환>처럼 돈이 안 되는 영화를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배급사나 극장에서 배급하고 상영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송환>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았지만 고작 예술영화관 8개에서 상영될 뿐이다. 얼마 전에 만난 김동원 감독은 ‘그 정도만 해도 블록버스터 다큐멘터리’라며 웃었다.
<송환> 같은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환경은 우리나라 문화계 전체를 위해 중요한 일이다. 왜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회적 환원을 밥 먹듯이 말하면서 ‘예술창작지원펀드’ 같은 것도 하나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 미국, 유럽 다큐멘터리 작품들의 많은 수가 그런 돈으로 만들어지고 배급된다. 왜 우리나라 문화계 관리들은 영화산업 진흥을 모색한다면서 다큐멘터리 쪽은 내놓은 자식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의 토양이요 밑거름이다. 김동원 감독도 그렇고 다큐멘터리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영화로 돈 벌 생각 없는 사람들이다. 그냥 만들고 상영할 수 있게만 해주면 행복해할 사람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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