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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프라이즈>(http://www.seoprise.com)에서 펌.
<보스턴 리뷰>라는 잡지에 실린 노엄 촘스키의 에세이입니다. 부시행정부가 취하고 있는 일방주의적 외교 정책의 역사적 배경이라든가 대이라크 정책의 변화와 침공의 허구성 등이 촘스키 특유의 매서운 필치로 담겨져 있습니다. 최대한 글맛을 살리려고 다소 생소한 비유까지 그대로 살렸습니다. 대신 이해에 도움이 될만한 설명을 괄호 속에 달았고요... (후략) ('헤르메스'라는 필자가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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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엄 촘스키 : 지배와 그 딜레마 - 부시 행정부의 제국주의적 거대 전략
지난 2002년은 국제 문제에 있어 중요한 한 해였다. 정치 생활의 정상적 파동에서 하나의 패턴이 설정된 것은, 중요하고도 긴밀히 상호 연관된 몇 가지 사건들로 특징지어지는 2002년 9월이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 미국이 신국가 안보 전략을 선포하면서, 세계 패권을 영원히 유지할 것임을 천명했던 것이다. 미국이 최고 지위에 군림한다는 차원에서, 여기에 대한 도전은 힘으로 응징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와 동시에 전쟁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이라크 침공을 위한 대중 동원이 시작되었다. 침공 직후 뉴욕타임스는 이라크 전쟁이 부시 독트린에 대한 “최후가 아닌 최초의 테스트가 될 것”라면서, “이 같은 선제 공격 정책의 실험에서 세균 배양 접시는 더욱 커질 것”(전쟁 확산을 비롯, 문제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뜻)이라 전망했다.<주1>
그리고 나서 부시 행정부가 과연 국제 문제와 국내 문제에 대한 자신의 급진적인 의제를 밀어붙일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게 될 의회 중간 선거 캠페인이 본격화되었다. 존 아이켄베리(조지타운 대학 교수로 있는 미국의 정치학자입니다. <도전자 없는 미국>이란 책이 유명합니다)가 적절히 명명한 새로운 “제국주의적 거대 전략”의 기본 원리가 처음 등장한 것은 2차대전 초기로, 이후 꽤나 자주 반복되었다. 일찍이 2차 대전 참전 이전부터, 전쟁 입안자들과 분석가들은 미국이 전후 세계에서 미국의 세계 구상을 방해하는 국가들의 “주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도록”, “의문의 여지가 없는 권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최고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일관된 전략”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그 무대가 될 “거대 영역”이 서반구를 최소치로 잡고, 구 대영제국, 극동 지역, 나아가 독일의 패배가 명백해진 시점에는 되도록 유라시아 전반까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주2>
20년 후 원로 정치인 딘 애치슨은 미 국제법 학회에 대해 미국이 자신의 “권력, 지위, 위신”에 대한 도전에 대응한다고 해서 “법적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통고한 바 있다. 이는 직접적으로는 피그스만 사건(CIA가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위해 1961년 쿠바 출신 망명자들 1400여명을 피그스만을 통해 쿠바로 침투시킨 사건. CIA의 배신으로 100여명이 사살되고 끝났죠.) 이후 워싱턴 당국의 대쿠바 경제 전쟁에 대한 언급이지만, 애치슨이 “체제 변화”를 목표로 한 케네디의 테러리즘적 군사 행동을 의식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케네디의 군사 행동은 전 세계를 핵전쟁 몇 개월 전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중요한 요인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해소되자마자 곧바로 재개된 바 있다.
이 같은 독트린은 레이건 행정부가 니카라과 침공에 대한 국제 사법 재판소의 사법권을 거부하면서 다시 한 번 등장한다. 당시 국무부 법률 고문인 에이브러햄 소퍼는 이를,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우리의 관점에 동의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며, 오히려 “중요한 국제 사안에 대해 미국에 반대할 때가 많다”는 말로 설명한다. 따라서, 미국은 어떤 문제가 “본질적으로 자국의 사법권 안에 있는” 문제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서 ‘문제’란 국제 사법 재판소가 니카라과에 대한 “불법적 무력 행사”라고 비난한 행동, 쉬운 말로 국제적 테러리즘을 가리킨다.
이들의 후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이 “필요하다면 일방적으로” 행동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표명해 왔으며, 여기에는 “유력한 시장, 에너지 공급, 전략적 자원에 대한 장애 없는 접근권 보장”과 같은 사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일방적 군사력 사용”까지 포함된다.<주3>
이처럼 작은 사례만 보더라도 전략 기획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좁은지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2002년 9월에 울린 알람벨 소리는 합리화되었다. 애치슨과 소퍼가 한 일은 엘리트 집단 내에서 통용되는 정책 가이드라인에 대한 ‘묘사’였다. 그리고 나머지 사례들은 “대국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행하는 반면, 소국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받아들인다.”라는 투키디데스의 금언을 범세계적 수준에서 되풀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체니-럼스펠드-파월 일파는 훨씬 더 극단적인 정책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알려지기를 의도하고 있으며, 즉각적인 행동으로 자신들이 한다면 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준 바 있다.
이는 중요한 차이다. 제국주의적 거대 전략은, 군사적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이 “스펙트럼 전체를 아우르는 지배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가설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러한 프로그램은 잠재적 동맹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외에 몇 가지 부수적인 효과를 지닌다.
첫째, 전통적으로 군사비용을 감당해왔고, “신경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민간 경제 부문이 장차 치러야 할 비용과 리스크를 사회에 떠넘길 수 있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재정적 파탄 상태를 연출함으로써 “연방 지출을 삭감하라는 강력한 여론의 압력을 조성하여 뉴딜 정책의 역전이라는 공화당 행정부의 목표까지 덤으로 달성할 수도” 있다.<4> 이는 레이건 행정부의 프로그램이 훨씬 야심적인 계획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9월 17일 이러한 거대 전략을 발표하면서, 부시 행정부는 동맹국들에게 차후 논의가 4년간 유예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통고함으로써 “세균전에 반대하는 생물학 무기 협정을 강화하려는 국제적 노력을 포기”했다.<5>
몇 달 후, 유엔 군축 위원회는 우주에서의 군비 경쟁이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임을 인식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결의를 채택하였으며, 또 다른 결의를 통해 “독가스와 세균학적 전쟁 수단의 사용을 금지한 1925년 제네바 의정서”를 재천명했다. 두 가지 결의 모두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권 속에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미국의 기권은 비토나 다름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미국의 비토는 이중적이다. 사실이 언론에 의해 기록되는 것을 막고, 역사에 의해 기록되는 것을 막는다는 점에서.
몇 주 후, 미 우주 사령부는 신안보 전략에 발맞추어, 군사적 목적으로 우주를 “통제”하는 수준을 넘어 영구적으로 “소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주의 소유권이 “미국의 군사적 효율성의 핵심”으로서 “전 세계 모든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을 보장함은 물론, “....가용하고 기민한 범세계적 타격 능력이 있을 경우, 많은 희생을 요하고 공격하기 어려운 목표물을 원거리에서 신속하게 타격할 수 있으며... 미국과 동맹국 병력의 전진 배치가 제약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주/일 단위가 아닌 분/초 단위의 시간 내에, 미사일 사령부의 지휘관들이 신속하게 목표물을 회피, 지연, 기만, 교란, 파괴, 폭파,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할 수 있어” 끊임없이 미국에 대한 국지적 적대 의식을 낳고 있는 해외 기지의 필요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주6>
이와 같은 계획의 윤곽은 2002년 5월 부분적으로 유출된 미 국방부 계획 문서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우주 공간의 발사대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면, 거의 즉각적인 “불시의 공격”이 가능하리라는 “선제 억제” 전략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사 전문가인 윌리엄 아킨은 그렇게 되면 “지구상의 또는 우주의 그 어떤 목표물도 미국의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면서, 반면 미국은 “위협이 인지되면 언제 어느 곳이든 불시에 공격을 가할 수 있고, 미사일 방어망으로 보호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렇게 되면, 초음속 무인 비행기가 목표물을 감시, 타격할 수도 있고, 감시 시스템을 통해 “해외 도시의 모든 차량의 움직임을 추적, 기록, 분석해 내는” 능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7>
전 세계가 그 어떤 경고나 신뢰할만한 근거 없는 미국의 자의적 공격에 운명을 내맡겨야 할 상황이다. 이러한 계획은 최근을 제외하고는 역사적 전례를 찾을 수 없다. 더구나 더욱 기상천외한 계획까지 속속 입안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제법과 국제기구, 군비 통제 장치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국가 안보 전략이라는 단 한 마디로 무시해 버리는 부시 행정부의 태도를 반영한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독트린의 극단적 버전을 부시 행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인 것이다.
1940년대 중반 이후, 워싱턴 당국자들은 페르시아만을 “전략적 권력의 엄청난 원천이자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리품 가운데 하나”-아이젠하워의 표현에 따르면 “전략적 위치와 자원으로 인해 세계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로 간주해 왔다. 이 지역과 이 지역 자원에 대한 통제는 여전히 긴박한 정책적 과제다. 핵심 산유국을 장악하고, 세계 주요 원유 생산 체제의 심장부에 있는 가장 신뢰할만한 군사 기지들을 손에 넣고 나면, 워싱턴 당국자들은 (황금기 시절 영국인들이 사용했던 용어를 빌리자면) “아랍인의 외양”을 갖추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형식적인 민주주의도 나쁠 건 없겠다. 단, 역사와 작금의 현실로 미루어 볼 때, 거기엔 조건이 붙는다. 워싱턴의 “뒷마당”을 알아서 벗어나지 않는 유순한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은, 일부러 실패하려해도 상당한 재주가 필요할 것이다. 이보다 훨씬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군사적 점령은 대개가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한 사회를 사실상 파괴해 버린, 10년 동안의 살인적인 경제 제재보다 못하면 또 얼마나 못하겠는가. 더구나 그 사회는 (인상적인 불량배들의 전시장에서 하나만 꼽자면)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와 더불어, 워싱턴의 현 당국자들의 든든한 지원 속에 사악한 독재자의 반열에 오른 자가 지배하던 사회가 아닌가. 대단히 무자비했음에도 끝없이 협력자들의 행렬을 끌어 모으고 자국 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던 국가의 최근 사례로서, 나치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유럽이나 소련이 짓누르고 있던 동유럽과 달리, 이라크 내부의 저항 세력은 그 어떤 의미 있는 외부 지원도 받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거대 전략은 워싱턴 당국자들에게 “예방 전쟁”을 수행할 권한을 부여한다. 선제 공격의 구실로 언제 무엇을 내세우든, 그것이 예방 전쟁을 정당화해 주지는 못한다. 현재 그것을 열렬히 주창하는 자들이 해석하는 예방 전쟁의 개념은 특히 그러하다. 날조된 위협 또는 상상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다니, “예방”이란 말조차 과분하다. 너무나 간단한 이야기로, 뉘른베르크 법정은 예방 전쟁을 “일급 범죄”로 단죄한 바 있다.
이상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아서 슐레진저(케네디 대통령 남미 담당 특보를 지낸 진보적 역사학자입니다)는 부시의 거대 전략에 대해, “어느 선배 대통령이 치욕으로 남으리라고 말했던 바로 그날, 제국주의 일본이 진주만에 대해 썼던 정책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고 말했다. 슐레진저는 루즈벨트가 옳았다면서, “그러나 바로 오늘 치욕 속에 사는 것은 바로 미국인들”이라 덧붙였다. “9.11 이후 미국을 집어삼킬 듯 밀려들던 전세계적인 동정의 물결이, 미국의 오만과 군국주의에 대한 혐오의 물결에 밀려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주8>
대부분 레이건-부시(아버지) 행정부의 반동적 분파들을 재활용하고 있는 이 나라 정치 지도부의 입장에서, “전세계적인 증오의 물결”은 특별한 문제거리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에 대한 두려움이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주류 비평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행동이 대량 살상무기(WMD)의 확산 위험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별 문제거리가 안 된다. 그보다 훨씬 우선 순위가 높은 목표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범세계적 패권 구축과 자신들이 짜놓은 국내 의제의 실행-지난 한 세기 동안 대중 투쟁을 통해 달성된 진보적 성과물들을 무너뜨리고, 그 같은 급격한 변화를 제도화함으로써 원상 회복을 극히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패권적 강국의 입장에서 공식적 정책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본보기가 되는 행동을 통해 “국제법상의 새로운 규범”을 구축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저명한 평론가들이 나서서, 하나의 행동 지침으로서 새로운 규범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법이란 유연한 것이자 살아 움직이는 도구라고 해명해 줄 것이다. 총을 든 사람이 “규범”을 만들고 국제법을 수정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선택한 목표물은 몇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무방비 상태여야 하고, 둘째 수고로움에 합당한 중요성이 있어야 하며, 셋째 우리의 생존에 대한 긴급한 위협이면서 극도로 사악한 본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라크는 모든 면에서 딱 맞는 목표물이었다. 앞의 두 조건은 말할 것도 없고, 세 번째 조건에 대해서는 부시 및 블레어 일파의 연설 내용을 반복하는 것으로 족하리라고 본다. “그는 지배와 협박과 공격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미 그러한 무기를 여러 마을에 사용하여, 수천 명의 자국민들이 죽거나 눈이 멀거나 불구가 되었다. … 이를 두고 사악하다고 하지 않는다면, 사악하다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유창한 비난은 분명 옳은 소리처럼 들린다. 그리고 악의 확산에 기여한 자들을 아무런 징벌 없이 내버려둬서도 안 된다. 거기에는 그처럼 고결한 말을 하는 장본인과 주변 인물들, 그리고 과거 미국이 자국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이란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토록 끔찍한 범죄를 잇달아 저질렀음에도 오랫동안 후세인이라는 극도로 사악한 인물을 지원하던 시절, 거기에 동조했던 인물들까지 포함된다. 우리는 부시를 끝까지 지지해야 한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의 수출기업을 돕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대단히 인상적인 것은, 정치 지도자들이 후세인이라는 괴물이 저지른 최악의 범죄들을 낱낱이 열거하면서, “사실은 우리가 도운 겁니다. 우리는 그런 일에 별 관심이 없었거든요.”라는 중대한 말을 너무나 쉽게 빠뜨린다는 점이다. 최초의 진정한 범죄-지시를 어기고(혹은 잘못 알아듣고)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를 범하자마자 이라크인 친구에 대한 그들의 지지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처벌은 가혹했다. 그의 국민들에게 말이다. 독재자는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고, 과거의 동맹국들이 부과한 경제 제재 덕분에 도탄에 빠진 국민들을 더욱 강하게 틀어쥘 수 있었다.
그들이 쉽게 빠뜨리는 또 한 가지는 워싱턴 당국자들이, 걸프전 직후 후세인이 정권 타도 직전까지 갔던 반란을 진압하자 다시 그를 지원하게 된 이유다. 뉴욕타임스의 국제문제 담당 수석 기자는 워싱턴 당국자들의 입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사담 후세인 없는 이라크 철권 통치 체제일 것”이라면서, 그러나 그러한 목표가 달성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차선책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란이 실패한 까닭은 워싱턴 당국자들이 “후세인이 어떤 죄악을 저질렀든, 그의 압제에 고통받은 어느 누구보다 그가 자국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더 많은 기대를 서방과 해당 지역 국가들에게 심어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9>
이 모든 사실은 미국의 묵인 하에 후세인이 벌인 공포의 광란에 희생된 사람들이 묻힌 집단 묘지에 대한 논평에서도 빠뜨려졌다. 이제 이러한 범죄는 전쟁을 합리화하는 “도덕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주10>
1991년에 이미 널리 알려졌으나 국가의 이름으로 무시된 사실, 그것은 바로, 반란이 성공했다면 이라크는 이라크인들의 손에 넘겨졌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내에서 양심에 가책을 느낀 사람들은 또 한 가지 전통적인 문제인 전쟁의 정당성을 둘러싼 열띤 논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2002년 9월초부터 후세인이 미국에 가하는 위협과 그와 알 카에다의 연관성에 대해 경고하는 희미한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고, 그가 9.11 공격에 연루되어 있다는 광범위한 암시가 뒤따랐다. <핵과학 편람> 편집장 린다 로드스틴의 논평을 그대로 옮기자면, “언론 매체의 1면을 뒤덮은” 그 같은 의혹의 많은 부분은 “비웃음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비웃으면 비웃을수록, 언론들은 더욱 갖은 애를 써서 그 같은 의혹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를 애국심의 테스트로 만들어 버렸다”
과거에도 흔히 그랬듯이, 선전 공세는 최소한 단기적인 효과는 갖는 법이다. 몇주 안에 미국인 대다수가 후세인을 미국에 대한 긴박한 위협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미국인의 절반 가까이가 9.11 테러의 배후에 이라크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믿음에는 전쟁에 대한 지지가 동반되었다. 선전 공세로 인해 유권자들이 당면한 관심사를 접어 둔 채 악마와도 같은 적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권력의 우산 속으로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중간 선거에서 정부 여당이 과반수를 약간 넘는 의석을 차지하는 정도는 손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집요한 선전 공세는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좀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대중들을 흔들어 놓지는 못했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미국보다는 유엔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이라크 재건 사업을 미국보다는 유엔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주11>
점령군이 대량 살상 무기를 찾아내는 데 실패하자, 부시 행정부의 입장은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절대적 확신”에서, 자신들의 비난은 “잠재적으로 무기 생산에 활용될 수 있는 장비의 발견으로 정당화된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정부 고위 인사들은 “죽음의 무기를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국가”에 대한 공격 권한을 미국에게 부여하고 있는 현재의 예방 전쟁의 개념을 “다듬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정안은 이렇다 “부시 행정부는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할 의도나 능력만 있는 적대 체제에 대해서도 행동을 취할 것이다.”<12>
이렇게 되면 군사력 동원의 장애물은 상당 부분 제거된다. “예방 전쟁” 독트린의 이 같은 수정은 그들이 만방에 내세웠던 침공의 근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선전의 성과 가운데 가장 눈부신 것으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와 멸시를 무릅쓰고 중동에 민주주의를 심으려는 대통령의 “비전”에 대한 찬사일 것이다. 이는 유럽 국가들이 보이는 태도의 차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구유럽은 욕설을 퍼부은 반면, 신유럽은 미국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기준은 명확했다. 구유럽은 절대 다수 국민들과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정부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반면, 신유럽의 영웅들은 대부분의 경우 국민 다수를 무시하고 텍사스주 크로포드 목장에서 날아드는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던 것이다. 미 의회가 질 낮은 코미디로 전락하는 동안, 정치 평론가들은 배은망덕한 구유럽의 정신적 병폐에 대해 떠들어댔다.
정치 스펙트럼에서 자유주의적 극단에 서 있는 리처드 홀브룩(외교가의 거물. 클린턴 행정부에서 보스니아 평화 협정을 이끌어낸 인물이기도 합니다)은, 신유럽의 원래 멤버라 할 수 있는 8개 국가의 인구가 구유럽의 인구보다 많다는 점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고립”이 입증된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강조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대중이 민주주의에서 뭔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급진 좌파’의 이단적 생각을 거부한다면 말이다. 그런가 하면 토머스 프리드먼은 프랑스의 안보리 상임 이사국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가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따지면 신유럽의 국민들은 아직도 보육원에 있어야 할 것이다.<13>
구유럽에 대한 분노는 민주주의에 대한 멸시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미국은 언제나 유럽 연합을 양면적인 태도로 대해왔다. 왜냐하면 유럽이 국제 문제에 있어서 독자적인 세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원로 외교관인 데이비드 브루스는 케네디 재임 시절 유럽의 통합을 주도적으로 주창하면서, 워싱턴 당국이 통합 유럽을 주도권을 쥔 미국에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미국의 동등한 동반자”로 대할 것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는 유럽이 “독립된 역할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경우” 닥쳐올 “위험”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30년 전에 행한 “유럽의 시대”라는 연설에서 헨리 키신저는 유럽인들에게 미국이 관할하는 “전반적인 질서의 틀 내에서” “지역적 책임”을 다해 줄 것을 권고했다. 프랑스와 독일을 연결하는 산업 및 금융 심장부를 기반으로, 독자 행보를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3극 체제에서, 그와 같은 우려는 아시아까지 확대된다. 동북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지역으로 세계 GDP에서 (미국보다 훨씬 많은) 30퍼센트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외환 보유고의 절반을 쥐고 있다. 선진 산업 경제와 풍부한 자원을 가진 잠재적 통합 지역인 것이다. 이 모든 사실들이, 워싱턴 당국자들이 필요하다면 힘을 동원해서라도 영원히 관할하겠다는 전반적인 질서의 틀에 대해 도전하는 불장난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듯, 폭력은 강력한 지배 수단이다. 그러나 지배의 딜레마도 결코 만만치 않다.
1> David Sanger and Steven Weisman, New York Times, 10 April 2003.
2> Memorandum of the War and Peace Studies Project of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with State Department participation, 19 October 1940. Laurence Shoup and William Minter, Imperial Brain Trust (Monthly Review Press, 1977), 130ff.
3> Dean Acheson, American Society of International Law Proceedings 13, 14 (1963); Abraham Sofaer, U.S. Department of State Current Policy 769 (December 1985); President Bill Clinton, address to the U.N., 1993; Secretary of Defense William Cohen, Annual Report, 1999.
4> Thomas Ferguson and Joel Rogers, Right Turn (Hill and Wang, 1986). On Clinton’s contribution see Michael Meeropol, Surrender: How the Clinton Administration Completed the Reagan Revolution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00; updated 2003).
5> Peter Slevin, Washington Post, 19 September 2002.
6> Air Force Space Command “Strategic Master Plan (SMP) FY04 and Beyond,” November 2002.
7> William Arkin, Los Angeles Times, 14 July 2002; Michael Sniffen, Associated Press, 1 July 2003.
8> Los Angeles Times, 23 March 2003.
9> Thomas Friedman, New York Times, 7 June 1991. Alan Cowell, New York Times, 11 April 1991.
10> Thomas Friedman, New York Times, 4 June 2003.
11> Program on International Policy Attitudes (PIPA), University of Maryland, 18?22 April 2003.
12> Dana Milbank, Washington Post, 1 June 2003. Guy Dinmore and James Harding, Financial Times, 3?4 May 2003.
13> Lee Michael Katz, National Journal, 8 February 2003. Friedman, New York Times, 9 February 2003.
14> Frank Costigliola, Political Science Quarterly (Spring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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