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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5-19 03:42:03 / Hit:1439  

곽말약의 <<이백과 두보>>

  곽말약, 오상훈 역, <<곽말약이 쓴 이백과 두보>>, 바른글방, 1992.

  곽말약의 <<이백과 두보>>는 내가 감탄하면서 읽은 책 중의 하나이다. 이 책에서 얻은 감동 때문에 그의 또다른 저서인 <<십비판서>>와 <<역사소품>>도 찾아 읽었지만 그러나 이 두권의 책은 <<이백과 두보>>를 읽을 때 만큼의 감동을 주지는 않았다.
  이 책의 서술 의도는 이백과 두보에 대한 전통적 평가를 뒤짚는데 있다. 당대(唐代)의 문인(文人)인 원진 이래 미학적, 윤리적으로 이백보다 두보를 우월한 지위에 놓는 것이 동아시아의 일반적 전통이라 하는데, 곽말약은 사대부 지배하의 중국에서 이러한 "두보 우위론"이 왜 지속되었는가를 면밀하게 고찰한다.(이것은 역사 분야에서 "마반(馬班) 우월론쟁" [사마천과 반고가 누가 더 뛰어난 사학자인가]에서 "반고우위론"과 짝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집필 당시(1971?)에도 지배적이었던 두보 우월론이 얼마나 자가 당착적인 현상인가, 이른바 "해방된" "인민의 나라"에서도 "지주 계급의 옹호자"라 할 두보를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를 비판한다.
  아름다움과 윤리는 때때로 어긋나기도 하지만, 근원적으로 일치함을 일깨운 책으로 나에게는 상당한 감흥을 주었고,  이른바 "홍유(鴻儒)"만이 쓸 수 있는 책이 이런 책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하게 한 책이다.

  감탄하면서 읽었던 몇 부분을 옮겨 적어본다.

  이백, 두보의 문장
  그 빛줄기는 만장의 길이일세.
  멋모르는 바보들이
  근거를 들먹이며 비방한다 해도
  왕개미 거목을 흔들 듯,
  가소롭구나, 자기 역량을 모르는 것이.
    186쪽

  그의 <숙오송산하순온가 : 오송산 아래의 순씨 노파집에 묵으려>라는 시를 읽어보자.

  나 오송산 아래 묵으니
  기쁠 것도 없어 적막할 뿐이었네.
  농사는 가을 맞아 고달프고
  이웃에선 아낙의 쌀 빻는 소리 찬데,
  노파는 무릎 꿇고 모아풀 열매로 만든 떡 권하니,
  달빛에 흰 소반이 빛나네.
  빨래하는 아주머니를 무안하게 할지라도,
  차마 먹을 수 없어 세 번 사양하네.

  옛사람은 바닥에 앉을 때 꿇어앉는 자세를 취했다. 다리를 교차시켜 앉는 것도 "호좌胡坐"로서 외래의 좌법이다. 손님이 꿇어앉았으니 음식을 내는 여주인도 무릎을 꿇고 권하는 자세를 취했다. 오늘날 일본인은 아직도 이러한 습관을 보전하고 있는데, 수당대에 중국으로부터 배워간 것이다. 이백은 순씨 노파를 "표모漂母"라고 비유함으로써 자신을 한신에 비유했다. 이 시는 그가 비교적 젊었을 때의 작품인 것 같다. "전가추작고 린녀야용한 ; 농사는 가을 맞아 고달프고 이웃에선 아낙의 쌀 빻는 소리 찬데"는 이백이 농민들의 고달픔을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묘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농가에서 환대받을 때 경건한 마음으로 세 번이나 사양하며 수저를 들지못하고 있었다.
  다시 그의 <추포가秋浦歌>의 14수를 보자. 여기서 그는 광산 노동자를 노래한다. 광산 노동자를 노래하는 이 시는 이백의 작품 중에서 유일한 한 수일 뿐만 아니라 중국 고대시가 가운데서도 유일한 경우가 아닐까?

  용광로의 불길 천지를 밝히고
  붉은 별빛 보라빛 연기에 가물거리네.
  불기로 붉어진 노동자의 얼굴이 달밤 밝히고,
  그 노래소리 차가운 냇물 출렁이게 하네.

  겨우 20자에 불과하지만 야금하는 노동자의 노래를 매우 기백 있게 표현하고 있다. "추포에 은, 구리가 있다"고 한 것은 <<신당서 지리지>>에 보인다. "난군명월야 ; 불기로 붉어진 노동자의 얼굴이 달밤 밝히고"와 "가곡동한천 ; 그 노래소리 차가운 냇물 출렁이게 하네"는 댓구를 이룬다. "난랑"에 대해여 종래의 주석가는 해석을 못했지만 실은 은광이나 동광의 제련노동자이다. 용광로에서 얼굴이 붉어졌기 때문에 "난랑"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이백의 독창적인 어휘이다. "명월야"의 "명"자는 당연히 동사로 해석해야 한다. 말하자면 노동자의 붉어진 얼굴이 "달밤"을 더욱 빛나게 한다는 뜻이다. 노동자들은 제련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노래를 불러 부근의 시냇물을 출렁이게 한다. 이 시는 마치 노동자를 주제로 한 한 폭의 근대식 유화 같다.
  이와 같이 노동자, 농민의 생활을 노래한 시는 비록 "푸른 바다 속의 고래를 잡는" 걸작도 아니고 "비취새 난초 위에 있는 듯한" 수작도 아니지만, 평민성이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하나의 결정체다.
  술을 좋아한 이백은 주점의 주인 노인과 막역한 사이였다. <곡선성선양기수 ; 선성의 술 잘 빚는 기노인을 곡함>이라는 시에는 그의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기노인은 황천에서도
  노춘주를 빚으리.
  저 세상엔 이백이 없으니
  누구에게 술 팔려나.

  "선양"이란 직접 술을 빚고 파는 소상공업자이다. 이 시에도 이백이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평등한 태도로 사람을 대할 수 있었던 사실이 표현되고 있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러한 그를 좋아했다. 옛적 농촌의 주점에는 등불 혹은 간판에 "태백세가" 혹은 "태백유풍"이란 글자를 흔히 썼다. 이것은 이백에 대해 기념하고자 하는 자발성의 소산이다. 두보도 마찬가지로 술을 좋아했지만, 어느 지방의 주점에서건 "소릉세가"나 "소릉유풍"이라는 간판이 붙은 것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인민이 애호하는 바는 결국 사대부 계층이나 지식인들이 애호하는 바와는 다른, 그들 스스로의 선택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192∼194쪽.


+) 이백에 대한 찬탄에도 불구하고, 곽말약은 다음 문장을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굴원이 도달했던 수준에는 이백이나 두보도 이를 수 없었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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