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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5-10 19:45:11 / Hit:1560  

<좋은 날>에 대해

좋은 날


꽃이 피니
몸이 따라 아프네

이런 날 벚나무 발치에 누우면
하늘이 죄다 꽃밭이고
햇살은 꽃잎에 매달려 은비늘처럼 파닥인다

나 저 꽃그늘 아래 누워 취한 적 있지
누구나 한때는 그렇듯이
다른 세상으로 가는 틈새를 엿보았네
그날 내가 잡았던 누군가의 손은
이를테면 은밀한 地圖였던 셈
손금들이 만나고 얽혀서
알 수 없던 운명의 지류가 환해졌지
비켜 가던 세월은 대수롭지 않았네

그러나 좋은 날은 쉬이 가고
꽃그늘로는 하늘을 가리지 못하고
맞잡은 손은 헐거운 매듭처럼 풀리네
몇 번의 겨울을 지나며 나는 스스럼없이
외투 주머니 속에 손 숨길 줄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봄날
누군가 남긴 火傷 같은 손자국
꽃 피니 다시 화끈
아프네



  도처에 감각적인 표현이 살아있는 시입니다. 처음의 ‘꽃이 피니 / 몸이 아프네’에서 마지막 ‘누군가 ... 꽃 피니 다시 화끈 / 아프네’으로의 표현과 연결, ‘햇살은 꽃잎에 매달려 은비늘처럼 파닥이네’, ‘누군가의 손은’에서 ‘운명의 지류가 환해졌지’까지 등의 표현은 죽입니다. (언수야, 만족? ^^;)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습니다.

1. 어투
  시 전체에 ‘-네’라는 어미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어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에서만 사용하는 어투라고 볼 수 있고, 너무 시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너무 시적’이라는 말은, 다시 말해, 독자가 이미 ‘낭만적’ 또는 ‘극적’ 또는 ‘미학적’이라는, 자기 의식 속에 있는 시의 일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시를 읽게 된다는 말입니다. 뭐, 절대 써서는 안 되는 나쁜 어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시를 ‘시의 이미지’라는 이미지의 일정한 틀 안에서 읽히게 할 수도 있어서, 이런 어투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는 한, 저는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네’를 ‘-다’로 바꾸면 어떨까요? 장단점이 있겠지만, 제 감각으로는, 조금 딱딱한 느낌이 생기지만, 그게 오히려 더 진지한 느낌을 주고, 특별히 시라는 이미지를 덜 가지고 읽게 되어서 해독의 가능성이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2. 불필요한 설명
  ‘누구나 한때는 그렇듯이’, ‘그러나’, ‘하지만’ 등은 불필요한 설명에 해당됩니다. 대부분, 접속어들은 시 속에서 혹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이미지의 배치
  이 시는 화려한 이미지들이 적절히 사용되고 있는데, 굳이 아쉬움을 얘기하자면, 그 이미지들의 연결과 통합이 약간 느슨합니다. 이 시에 나타난 주된 이미지를 보면, ‘벚나무’와 ‘꽃’의 식물 이미지, ‘은비늘’의 바다, 또는 물고기 이미지, ‘지도’ 이미지, ‘봄’과 ‘햇살’에서 ‘그늘’을 거쳐, ‘화상’으로 이어지는 태양 이미지 등입니다. 이런 이미지들이 효과적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근사한 통일성을 갖춘다면 더 좋을 텐데요.

4. 한자 사용 
부연 설명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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