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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꽃
민망하여라 가랑이를 활짝 벌리고 피어 있는
꽃들
저 꽃들 따 먹으며 돌아다니던 날 있었네
그날은 여러 번 해가 지던 날
부르는 소리 들리지 않아
마을로 내려갈 준비를 다하고도
산모퉁이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였네
활짝 입을 열고도 말없던
꽃들 캄캄해지고
주위의 어둠보다는 손 안에서 자꾸
딱딱해져 가는 꽃들이 무서웠네
울며 집으로 돌아가 불을 켤 때
상 아래 떨어진 밥풀처럼, 굳은 표정의
그 꽃들
도준이의 일취월장한 실력을 엿볼 수 있는 감각적인 시입니다. 흔하고 아름다운 추억쯤으로 쉽게 떨어질 수 있는 소재를, 성적 이미지와 공포 이미지, 죽음 이미지를 잘 결합해서 성공하고 있습니다. 얼핏 대립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멋지게 뒤섞어버리고 있는데, 특히, 어린이, 꽃 등의 생명 이미지와 죽음의 이미지가 한 몸에 결합된 것이 빛납니다. 따 먹던 꽃이 맨 뒤에서 밥풀로 연결된 것도 절묘합니다.
‘-네’로 끝나는 어투를 사용하고 있는데, 제가 호남이의 시, <좋은 날>을 얘기하면서 말했던 부정적인 면은 적어 보입니다. 그런 어투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투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시’적이고, 동화적인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역설적인 효과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선 다시 한 번, 자기성찰이 필요합니다.
시작 부분도 강렬합니다. 시는 짧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말해, 좋은 시는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반, 어떻게 끝나느냐가 반, 나머지 전부 합쳐 반, 이렇게 150% 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지적해 보겠습니다.
1. 동어반복
1행의 ‘활짝 벌리고’와 ‘피어 있는’은 내용상 꽃이 ‘어떻게 있다’는 부분에 해당되는 다른 표현입니다. 이미 ‘활짝 벌리고’ 있는 마당에 다시 ‘피어 있을’ 필요 없지요. 또, 어떻게 ‘피어 있’느냐를 시적으로 표현한 말이 ‘가랑이를 활짝 벌리고’이고요. 따라서, ‘피어 있는’은 동어반복에 해당됩니다.
2. 리듬
조금 다르지만 내용상 상황을 설정하는 역할을 하는 1연과 2연이 모두 ‘-네’로 처리되어 있어서, 2연의 ‘-네’ 부분을 읽을 때 리듬감이 확 떨어집니다. 이미 재미가 없어진 거죠. 시... 참 무섭죠? 그 짧은 글 속에서 이렇게 금방 싫증을 느끼니... 2연의 ‘였네’는 삭제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라고만 하는 것이 훨씬 리듬이 사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손해 보는 것도 없고요.
3. 시어의 다양성
‘활짝’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이 짧은 시 속에서 같은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손해지요. 한 가지를 ‘쩍’ 등,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로 바꾸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4. 맨 마지막 행의 '그'는 필요 없어 보입니다.
아쉬운 점은 아니지만,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아무래도 이런 시는 소품으로 보입니다. 이번 작품이 성공적이었으니, 좀 더 전체성을 가진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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