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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5-11 00:15:39 / Hit:1122  

강냉이 아저씨에 대한 추억

어제 시댁에 제사 지내러 가서 장을 보러 나갔다.
4일, 9일에 서는 오일장에 갔는데 거기서 오랜만에 강냉이 튀기는 모습을 보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오래전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동네에 오곤 하던 단골 엿장사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 말고도 엿을 팔러 오는 아저씨들이 간혹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늘 그 아저씨와만 거래(^^;)를 하곤 했다.

그리고 그 잘생긴 엿장사 아저씨를 우리는 강냉이 아저씨라고 불렀다.
아마 우리가 엿보다는 주로 강냉이를 바꿔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이 아닐까~

아저씨의 가위 소리가 들리면 그동안 모아 두었던 종이며 깡통이며 못쓰는 쇠붙이등을 가지고 달려나갔고 강냉이 아저씨도 어린 나나 동생을 귀여워하며 덤을 주곤 했다.

강냉이와 바꿔먹을 잡동사니가 없는 날이라도 동네에서 아저씨를 보면 반가워서 큰 소리로 인사를 했고 간혹 아저씨의 공짜엿을 얻어먹기도 했다.

하지만 머리가 크고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어쩐지 그런식으로 크게 인사를 하며 아는체 하는 것이 쑥스러워진 나는 새침을 떨며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기 시작했고, 아저씨와의 관계는 차츰 소원해져갔다. 그렇게 차츰 멀어져만 가던 강냉이 아저씨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어느 봄날 오후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실례한다면서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그 아주머니는 강냉이 아저씨의 부인이었다. 강냉이 아저씨는 엿장사를 해서 돈을 꽤 모았다고 한다.

그런데 먹고 살만해지니까 아저씨는 바람을 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애인에게 우리집 바로 옆의 주공아파트에 살림을 차려주었다는 것이다.  집에는 살림할 돈도 안주고 애인에게 빠져 자식들도 돌보지 않는 야속한 아저씨 때문에 아주머니의 마음 고생은 심한 듯 했고 얘기 중에 그 아들이 우리 오빠와 같은 중학교에 다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아저씨가 애인에게 살림차려준 집을 대강 파악한 아주머니는 그 아파트가 우리집 바로 옆에 있어 잘 보이는  위치이기 때문에  우리집 정원에서 강냉이 아저씨가 애인의 집에 드나드는지 살펴보면 안되겠냐고 부탁하러 온것이었다.

아주머니의 처지를 동정한 엄마는 그 부탁을 들어주었고 그 후로 우리는 가끔 우리집 정원에서 옆에 있는 아파트를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서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 뒤에 어떻게 됐냐 하면 본처와 애인이 머리채를 휘어잡고 싸운다든가 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학교 가고 없는 사이에 그런 일이 혹 벌어졌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다.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얼마가 지나자 그 아주머니도 오지 않게 되었다. 강냉이 아저씨는 그 뒤로도 여전히 우리 동네에 엿과 강냉이를 팔러 왔지만, 그 아저씨의 행실에 분노한 나는 그 뒤로는 아저씨를 봐도 인사도 하지 않고 아는 체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 뒤 전해들은 강냉이 아저씨의 최후..
강냉이 아저씨가 리어카에 너무 많은 고물들을 쌓아 올린 탓에 리어카가 엄청나게 무거워진 어느 날이었다

그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도로에서 무리하게 코너를 돌던 강냉이 아저씨의  리어카가 무게에 못이겨 옆으로 쓰러지는 사고가 일어났고 아저씨는 그 리어카 밑에 깔려버렸다. 그리고 너무 높게 쌓아올린 고물들의 무게 때문에 리어카 밑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고, 믿어지지 않는
얘기지만 강냉이 아저씨는 결국은 그대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http://www.7book.com 에서 퍼옴(본인 누님의 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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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번쩍하여 컴퓨터를 뒤져보니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을
시로 남긴 것이 발견 되었다. 너무 소품이고 졸필이라 시방에 넣을 수는 없고 그냥 여기에 남겨본다....  아마도 많이 이들이  어린시절의 이런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을 듯






    엿장수 김씨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세상이 동화였을 때부터
  집앞을 쩔컹거리며 지나가던 아저씨

  고무신을 훔쳐 나오고
  신문지 뭉치를 들고 달음질치던
  아이들 사이로
  엿장수 김씨

  내가 스물 네살이 되던 해
  김씨는 리어카와 함께 넘어졌다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남보란 듯이 이층집을 마련한 김씨 아저씨

  만류하는 부인을 뿌리치고
  거리로 나섰던 김씨는
  세탁비누를 실은 리어카에
  산만한 짐을 실고 가다가
  모퉁이에서 쓰러졌다

  오십 오년간의 생애에
  커다란 가위 하나

  내 유년을 수놓았던
  전설 하나가
  장례식과 함께 떠나가던 날
 
  진달래는 해사하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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