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2004-03-13 06:51:47 / Hit:1946  

탄핵이라니, 말이 됩니까? 그런데...

  이번 탄핵사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할 말이 없다’는데, 저는 할 말이 많습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 모두 ‘알 만 한’ 분들이신데, 탄핵사태 자체에 대해서 말 길게 하면 죄송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제정신 가진 분들의 말씀대로, ‘의회 쿠데타’이고 폭거입니다.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한민련 조폭들이 정국 주도권을 가지고 보수적인 헌법재판소 할아버지 재판관들과 선장 없는 내각을 압박, 더 나쁜 일을 꾸미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좋습니다. 생각 있는 분들은 광화문으로 촛불을 들고나가던, 풀과 벽지를 챙겨들고 인터넷을 도배하러 나서던,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그런데, 괜한 걱정이 들어 한 마디 하려고 합니다. 남들 다 아는, 괜한 걱정하는 게 제 특기거든요.

  (말을 이어가기 전에 밝혀둡니다. 저는 현존 정당들 중 민주노동당을 가장 지지합니다.)

  탄핵사태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현하려면 어차피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 텐데,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함께하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이 없이 반대의사만 표현한다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하기 전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해져야 합니다.

  냉정하게 이번 탄핵사태를 바라봅시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1차적인 책임은 한민련 조폭 의원들에게 있습니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좀 더 정확히 보면, 그 XX들 수준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낮았던 겁니다. 아무리 ‘막 간다’고 해도, 그렇게 분명한 법적 근거도 없이 국민들 손으로 뽑은 일국의 대통령 목을 치는 무서운 일을, 그렇게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일 줄은 저를 포함한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노대통령도 ‘설마~’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정치적 난관에 부딪쳤다고 해도, 저희들 내부문제가 심각해서 뭔가 외부적인 사건이 필요했다고 해도, 입법부의 구성원이라는 XX들이 그런 짓을 자행한 건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요, 정치적 테러입니다. 평소 ‘조폭같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조폭보다 더 낮은 수준의 ‘무대포 닭대가리’들입니다. 그 XX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탄핵 결의하니까 좋니? 우리들이 ‘무대포 닭짓’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2차적인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까놓고 얘기하면, 노대통령에게 있습니다. ‘지금 생각이 좀 다르더라도 전술적으로 힘을 합쳐야지, 같은 편을 비판하면 되겠느냐’고, ‘현 상황에 도움이 안 되는 양비론이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물론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힘을 합칩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갈 건 분명히 냉정히 짚고 넘어가야, 나중에 ‘무료노력봉사’한 바보 꼴을 면할 수 있습니다.

  지금껏 노대통령이 수구세력들에게 대응하는 방식이 무엇이었습니까? 사안마다 대결을 피해가지 않고 ‘올인 전략’으로 전선을 분명히 긋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퇴로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대치하는 상황을 만들고, 상대 수구세력들을 자극해서 그 XX들이 자기 입으로 ‘우린 이렇게 나쁜 놈들이야’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탄핵사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다수의 국민들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어떻게 국민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습니까? 국민들의 이성이 아니라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했습니다. 물론, 대중정치인으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노대통령의 방식은 다른 정치인들보다 훨씬 직접적인 방식이었습니다. 한 가지 예만 들어봅시다. 지난 2월 18일, 노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저도 정말 말할 수가 없다." 그냥 우리당 지지해달라고 하면 되지, 왜 국민들의 불안감을 이용하려 합니까?

  이번 사태가 나기 전의 발언과 행보도 전형적으로 ‘노대통령다운’ 것들이었습니다. 지난 10일에는, 마침내 역사적인 국회의장으로 등극(?)한 박관용이가 주선한 4당 대표와의 회담을 거부했습니다. 이야기가 평행선만 긋게 되더라도 정말 한 번 만나줄 수는 없었습니까?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는 ‘잘못이 있는 지 잘 모르겠는데 시끄러우니 사과하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보기에 따라 ‘할 테면 해 보라’는 식의 말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이나 선거법 위반 여부를 떠나, 제 언행이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린 점 사과드리며, 앞으로 유의하겠다’ 정도도 말할 수 없었습니까? 정말 그렇게 ‘올인’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물론, 노대통령은 정말 탄핵 의결까지 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해도 밑질(?) 게 없다고 판단했을 지도 모르지만, 모두들 너무 흥분한 나머지 까먹지 마시길, 결과적으로 노대통령에게도 국민을 볼모로 극한 대립까지 몰고 간 책임이 부분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희생자가 되길 자처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문제도 아닌 ‘탄핵’입니다. 탄핵이 의결되면, 한시적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는 것이고, 우리나라는 졸지에 모든 최종결정을 내려야 하는 국가수반을 잃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만 그런 것일 뿐이더라도, 국가적인 위기상황임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노대통령에게 묻고 싶습니다. 탄핵 당하니까 좋습니까? 우리당의 총선 승리가 국가수반 공석사태보다 중요합니까?

  자, 이번에도 국민들은 인질이 되었습니다. 찬성과 반대, 두 가지 선택 밖에 없고, 힘을 모아 반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상황을 원상회복시키고 한민련 XX들이 쪽박 차고 거리에 나앉게,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하지만 행여나 잊어버리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노대통령도 ‘총선 올인’ 전략으로 일관, 상황을 악화시킨 책임이 부분적으로 있습니다. 한민련 대신에 우리당이 다수가 되는 상황은 물론 저도 환영입니다. 하지만 조폭 XX들 대부분이 정치판에서 영구히 퇴출되고 우리당이 다수가 되어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얻어터질 것이고 빈민들은 여전히 소외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눈먼 정열’로 똘똘 뭉친 노사모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가 가야할 길의 끝에 우리당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져야 하고, '우리들의' 대안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 써놓고 보니, 또 모두들 알고 계실 괜한 걱정을 늘어놓은 꼴이 되었네요. ㅡㅡ; *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