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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 Score - 53
놀랍다! 놀랍다! 놀랍다! 놀랍다는 말 이외에 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영화진흥위원회는 2003년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전국관객 기준으로 53%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사상최고의 점유율이다. 우리나라 관객들의 반 이상이 외국영화보다 한국영화를 먼저 봤다는 말이고, 할리우드 영화보다 한국영화를 더 좋아했다는 말이고, 작년 한 해 동안 영화선택의 대세가 한국영화였다는 말이다. 이런 놀라운 점유율은 작년 한 해만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 지속되어온 ‘고공행진’이라는 점에서 더욱 고무적이다. <친구>가 개봉했던 2001년 50.1%로 이미 꿈의 50%대를 돌파했고, 2002년에도 48.3%로 돌풍을 이어가더니, 작년에는, 오... 오마이갓, 무려 오...오십...삼 퍼센트를!
무엇보다도 할리우드라는 세계 영화시장의 수퍼울트라공룡을 우리나라 안에서나마 뜨겁게 달구어진 사막의 모래 위를 우스꽝스런 주법으로 달아나는 목도리도마뱀 쯤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에서 즐거운 일이다. 할리우드가 어떤 곳인가? 세계 영화를 한 손으로 쥐락펴락하는 곳이고, 전 세계에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진 블록버스터들을 만들어내는 폭탄공장을 넘어, 이젠 세계의 대중문화 전체의 트랜드와 동력을 만들어내는 발전소이고, 그 속에서 유통되는 돈을 찍어내는 조폐국이고, 자신 이외의 모든 ‘작은’ 문화와 변방 문화를 ‘용만이 떡 먹듯’ 모조리 집어삼켜버린 후 그 잔해물들을 깨끗이 밀어버리고 자신들의 고향을 닮은 신도시를 건설하는 건설교통부이고, 지구라는 행성에서 사는 인간이라는 동물들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직선도로를 건설하는 도로공사가 아닌가? 떡이라도 만들어 돌리고, 잔치라도 벌일 일이다.
아직 잔치를 벌일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목표를 향해 축지법으로 달려가야 할 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평소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필자는 이러한 근면자조협동주의에 단호히 반대한다. 놀 땐 놀아야 한다. 잔치도 할 때는 해야 한다. 아쉬운 점, 부족한 점을 놀고 즐기면서 화제 삼아 낄낄거리며 생각해보면 되고, 혹 미운 사람이 있더라도 너무 째려보거나 때리지 말고 옆구리나 쿡 찔러주면 되고, 가야 할 길이 있으면 놀고 즐기면서 가면 된다. 영화가 뭔가? 놀자는 거 아닌가?
자, 그럼 잔치를 벌여보자. 어이구, 우리 관객님들, 어저께 극장에서 뵀는데 여기서 또 뵙게 되네요? 그래도 뵐 때마다 새록새록 반갑네요. 님들도 저처럼 이렇게 노는 데는 개근하시는군요?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그리고 바쁘신 건 알지만 올해부턴 조금만 더 다양한 영화를 먹어주세요. 얼핏 생소해 보이는 것들도 나름대로 맛있답니다. 어이구, 우리 감독, 스탭님들, 정말 반가워요. 박봉과 격무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세요? 그래도 우린 님들이 있어서 행복해요. 여건이 쉽지 않은 건 알지만 조금 더 창의력, 상상력을 발휘해주실 거죠? 홧팅! 어이구, 우리 제작자, 투자자님들, 너무 반가워요. 님들이 큰 일 하고 계시는 겁니다. 나중에 UN에서 훈장 준다고 하더라도 너무 당황해하지 마시고요. 하하하... 근데 조금 더 다양한 먹을거리를 조금 더 맛나게 만들어주시면 더 좋을 텐데요. 그래야 관객님들이 더 신나서 먹으러 오죠. 아, 아까 저기서 관객님들 뵀거든요? 가서 한 번 얘기 들어보세요. 아, 극장주님들도 오셨네요? 고생 많으신 거 다 알아요. 근데 극장이 10개가 넘는 멀티플렉스라고 가 봐도 가끔은 걸려있는 영화가 서너 개 밖에 안 되니까 여자친구가 짜증내더라고요.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좀 다양하게 걸어주시면 복 받으실 거예요. 혹시 새로 극장 지으시거나 리모델링하시면 자리나 통로도 좀 널찍널찍하고 깨끗하게 지어주실 거죠? 어이구, 우리 정책당사자분들도 나오셨네? 통상압력이다 뭐다 해서 고생 많으시죠? 님들 열심히 하시니까 우리가 이런 잔치도 벌이게 됐네요. 고마워요. 우리가 이렇게 잔치하는 거 알면 미국사람들 또 스크린쿼터 없애라고 난리칠 텐데 그래도 스크린쿼터가 우리 문화 전체를 위해서 너무 중요한 거라는 사실, 잘 알고 계시죠? 모두들, 차린 건 많지만 많이들 드세요.
올해에도 충무로에 전화를 걸 때마다 이런 말이 오갔으면 좋겠다. “띠리리리~” “뭐 하고 있어?” “음, 작업 중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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