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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03 03:46:35 / Hit:2686  

'다함께' 생각하는 촛불항쟁에 대한 단상

현재진형형인 이번 촛불항쟁의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함께’ 문제는 참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꽤 잘 알고지내는 사람들 몇이 다함께의 핵심근처에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가끔 만나면 뭐, 서로 견해와 입장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정치적인 얘기보다는 개인적인 얘기를 하게 됩니다. 참고로 저는 곧 진보신당에 가입할 예정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다함께가 프락치집단은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사회변혁에 대해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활동가집단이고 진보정치세력의 일부입니다. 현재는 합법적 정당활동공간으로 민주노동당을 전략적으로 선택, 사람들 대부분이 민주노동당에 가입되어있고 그 속에서 일정한 정치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집중적으로 노출된 ‘다함께’의 문제는 다함께 한 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진보를 바라는 정치세력들 모두가 상당히 심사숙고해야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다함께의 활동방식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함께를 프락치로 오해하고 제지하고 욕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 시민들입니다. 일반시민들의 지지를 받기는커녕 배척을 받았다는 말이죠.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항쟁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일반시민들의 정서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진보정치세력의 존립근거는 바로 대중이고 그 대중들의 지지입니다. 대중들에게 배척당했다는 건 과정이야 어찌됐건 전술적으로 심각한 패배를 의미하며 지도부는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할 듯합니다. 어쨌든 다함께 사람들에겐 참 딱한 일입니다. 진지하고 깊은 내부토론을 거쳐 자꾸 뺏기고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는 힘 있는 정치세력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다함께는 어떤 부분에서 일반시민들의 정서를 읽지 못한 걸까요? 바로 이 부분에서 이번 문제가 단지 다함께만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정치세력 전체의 문제로, 나아가 한국정치지형 내에 존재하는 정치세력 전체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이번 촛불항쟁은 지도부가 없습니다. 지도할 능력이 있는 세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시민들이 ‘지도’ 자체를 거부합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모두 자발적으로 교복 입고, 유모차 끌고, 예비군복 입고 나온 시민들은 누구의 지도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위지도부의 목적은 행동통일인데 그 행동통일 자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냥 자신들의 생각을 맘껏 토해놓고 싶어하고 자신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싶어합니다. 시위현장에서 누군가 뭔가를 제안하면 그 제안은 즉각 개인적 판단시스템에 의해 걸러지고 제지되거나 지지되어 행동에 옮겨집니다. 그런 자발적, 개인적 의사들이 집중적으로 모이면 전경버스를 밧줄로 묶어 끌어내버리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날 그런 방식이 효과적이었다면 현장에서 뿐 아니라 현재시위의 뇌 기능을 담당하는 아고라에서 지지받게 되고, 다른 아이디어들과 합쳐져서 필요한 준비물(?)과 진화된 시위전술을 가지고 다음날의 시위에 나가게 됩니다. 각각의 정치세력들은 단지 그런 수많은 개인들 중 일부로서의 기능만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같은 여러 명이 함께 있다면 ‘이렇게 하자!’고 소리 높여 ‘제안’을 할 수 있을 뿐, 그렇게 하도록 대중들을 조직하거나 동원할 수도, 지도할 수도 없습니다. 이번 촛불항쟁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정치세력과 단체들은 이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세력이나 단체도 앞장을 서지 않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어서일 것입니다. 이 상황은 공식적인 ‘주최 측’인 ‘대책위’에게도 마찬가지이고 그들의 역할을 보면 아주 명확해집니다. 예전 같으면 가장 공신력있는 지도부로 인정되었겠지만 지금의 역할은 단지 촛불문화제 이벤트를 주관하고 정보를 정리, 종합하고 배열하는 ‘정보의 허브’역할만을 하고 있습니다. 시위의 전술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오늘은 청와대쪽으로 가자’라든가 ‘막으면 세 무리로 나뉘어서 돌아서 가자’(5월 30일)라든가 ‘나누지 말고 그냥 모여서 광화문 쪽으로 가서 대치하자’(6월 1일) 등, 아주 느슨한 형태로만 존재합니다. 일반 시민들이 먼저 일어났고 다른 모든 정당, 단체, 세력들은 그 뒤를 묵묵히 따르고 있는 형국입니다.

며칠 현장에서 겪어보니 지도부가 없으니까 답답한 면이 있습니다. 시위대 내에서 불필요한 시간낭비와 귀찮고 사소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한동안 우왕좌왕 하기도 합니다. 어떨 땐 취한 노숙자가 와서 고래고래 헛소리를 하고 분위기를 망쳐도 누가 나서서 제지할 때까지 한동안 계속됩니다. 느리고 답답합니다. 한 번 진압이 시작되면 상대적으로 많은 희생자들이 생깁니다. 하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우선 ‘배후’가 없기 때문에 탄압의 명분이 없습니다. 직접민주주의적입니다. 시위참가자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의사를 전체의 행동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대중들의 결정이 맘에 안 들면 뒤로 빠지거나 집에 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는 행동이 시위방식이 됩니다. 지금은 ‘비폭력’이죠. 그러다보니 시위를 할 땐 느리고 꿈떠서 답답하기도 하고, 충분히 최소한의 자기방어 전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인원이 모였는데도 어이 없이 일방적인 폭력을 당할 땐 억울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체 국민들이 모두 지지하는 시위가 되고 다음날 시위대는 더 정당성을 가지게 되고 더 불어나게 됩니다. 아직까지 이런 형태의 시위문화는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강한 듯합니다.

왜 이런 형태가 되었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누구도 명쾌한 답을 가진 사람이 없을 듯합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새로운 형태의 대규모 대중저항모델이 아닌가 싶습니다. 추리해볼 수 있는 사실들이 몇 가지 있긴 합니다. 우선, 다음 아고라 등의 공간이 만들어낸 인터넷 상의 한국적 문제해결 문화가 상당히 반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중들이 믿고 신뢰할 만한 정치세력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10%대로 떨어진 쥐명박이 지지도보다도 낮은 민주당 지지도를 보면 할 말 다 했습니다. 하물며 그렇게 민주당 지지도가 떨어져 있는데도 그것조차 제대로 주워먹지 못하고 있는 진보정당들에 대한 지지도는 더 말해야 무엇하겠습니까? 참담할 지경입니다. 민노총 등 여타 재야단체나 노동단체들에 대한 신뢰 역시 아직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새로운 부분도 있지만 역사적인 전통과 맞닿아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일반민주주의적 민중항쟁의 큰 특징들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압도적 다수의 저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굳이 이전에 있었던 민중항쟁과 구분지을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기존의 틀로만 보면, 인터넷이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사실, 즉 상당한 고급정보가 대중화되어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교육하고 진화해서 대중들의 행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 바로 이번 촛불항쟁의 가장 큰 특징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번 시위문화와 굳이 가장 가까운 형태를 찾으려면, 좀 구태의연하기는 하지만, 역시 ‘축제’입니다. 말이나 글로 전달되는 소문이나 뉴스 등 개인의 존재감은 약하고 공적인 기존의 소통방식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쌍방향 정보공유와 의견교환 등 사적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새로운 소통방식을 같은 층위의 ‘축제의 욕망, 혹은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 놀이의 욕망’으로 본다면, 축제가 맞긴 맞는 거 같습니다.

자, 이제 정리해봅시다. 이번 촛불항쟁에서 대중들은 누구의 지휘나 지도도 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위대는 지도부도 배후도 없을 뿐 아니라 애초에 그런 것들이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형태 처음 봅니다. 그럼 사회의 진보를 바라는 세력들은 이제 필요가 없어진 걸까요?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까요? 이 문제는 이번 촛불항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행히도 그걸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주체가 뚜렷한 수위의 목표와 계획을 가진 개인, 혹은 단체가 아니라 뭉뚱그려진 대중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쥐명박을 끌어내릴 수 있을지, 나아가 보수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짜여진 한국의 정치지형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리게 될지, 아니면 저들의 간교한 속임수와 분열책동에 놀아나 작은 떡 한 조각만 나누어받고 눈 깜짝할 사이에 흩어지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축제는 천 날 만 날 계속되지 않습니다. 언젠간 끝납니다. 대중들은 저마다 바쁜 사람들입니다. 학교에 가야하고 토익 시험도 봐야하고 직장에 출근해야하고 아이들을 양육하고 살림을 꾸려나가야 합니다. 언젠가는 축제의 광장을 떠나 차가운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갈 겁니다. 저마다의 생활공간으로 돌아갈 겁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사회의 진보를 바라는 세력들의 역할이 생겨납니다. 대중들은 시위의 광장을 떠나겠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 자리에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대중들이 하고 싶은 일을 대신 해줘야 합니다. 이번 촛불항쟁이 어떤 수위에서 어떻게 마무리되더라도 거기서부터 그들의 몸뚱이가 되어 그들을 위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의 진보를 바라는 세력들은 가장 겸손하고 진지한 자세로 자기성찰을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작은 습관들, 안이한 관성들부터 바꿔야 합니다. 대중들의 선택은 너무나 단호해서 때로는 무섭기까지 합니다. 한 번 ‘이건 아니다’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절대로 누구를 지지하거나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번 다함께 문제는 그러한 대중의 힘과 단호함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함께 사람들에게는 억울한 일일 수 있지만 앞으로 그런 일은 어느 단체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해 차가운 현실의 가시밭길을 헤쳐 가며 대중과의 새로운 소통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어쩌면 이미 한 무리의 부지런하고 진실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겸손하게 가장 낮은 자세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찌그러진 김밥을 나눠먹고 물대포를 맞고 방패에 찍혀 피흘리면서 낡은 껍데기를 하나씩 벗어던지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요즘 시위현장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헌법 제1조>라는 노래입니다. 가사도 짧고 멜로디도 단순해서 저처럼 머리 나쁘고 노래 못하는 사람도 쉽게 따라할 수 있어서 좋더군요. 글을 쓰고 있자니 갑자기 이 노래의 가사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대중들은 이제 좀 더 많은 부분에서, 좀 더 전면적으로 자신들과 대화하고 자신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형태의 정치행위를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모든 권력은 자기 자신들에게서 나온다는 걸, 나아가 바로 자기 자신들의 것이고, 자기 자신들이 권력 자체라는 걸 직접 느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새로운 형태의 시위에 참가하면서 참 신기하다, 신기하다, 왜일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위의 글을 읽고 짧게 몇 마디로 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시작했는데 글이 길어졌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왜 그러셨어요? ^^ 별 알맹이도 없는 얘기를 길게도 떠들었네요. 죄송합니다. 다들 건강하시죠? 모두들 길바닥 위에서 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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