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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스코어 - 167,100
젊은 여자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왔다. 여자가 변호사에게 물었다. “이혼하면 양육문제나 재산분할 문제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은데요.” 변호사가 대답했다. “원칙적으로 반반씩의 권리와 의무가 있고 자세한 건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지금 이혼하실 생각이신지?” 여자가 말했다. “아직요.” 변호사가 물었다. “그럼 현재 어떤 상황인가요?” 여자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일단 결혼부터 해야 할 상황이죠.”
누군가 그냥 웃자고 만든 우스개지만 그렇게만 볼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통계청이 3월 31일 발표한 ‘2003년 혼인, 이혼 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총 16만 7천 100쌍이, 하루 평균 458쌍이 이혼했다. 이것은 전년치보다 무려 15%나 증가한 것이다. 문제가 이쯤 되고 보면 결혼도 하기 전에 이혼 후의 상황을 미리 알아본다는 위의 이야기가 우습지만은 않게 됐다. 이번 주 파이널 스코어는 작년의 총 이혼건수 167,100이다.
당사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누군지 밝힐 수는 없지만 필자와 매우 가까운 한 친구는 오래 전 한 권의 책을 읽고 열광했다. 인류학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되는 L. H. 모간의 <고대사회>가 문제의 책이었다. 그 녀석이 특히 열광한 부분은 ‘집단혼’에 관한 부분이었다. 집단혼은 한 세트의 형제자매와 다른 한 세트의 형제자매 사이, 또는 한 세트의 형제와 다른 한 세트의 자매 사이의 집단적인 결혼을 말한다. 녀석은 육아문제도 공동의 책임이 되어 훨씬 부담을 덜 수 있지 않겠느냐고 주장했지만, 녀석이 열광한 진짜 이유는 동시에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릴 수 있는, 합법적인 스와핑의 황홀한(?)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이코 같은 자식. 아무튼, 지금처럼 이혼문제로 골머리를 앓느니 옛날의 집단혼으로 돌아가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이혼은 도장 두 개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당사자에게 극심한 정신적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은 물론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그냥 개인사로 보아 넘기기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이혼의 급속한 증가는 독신가정, 이혼가정, 재혼가정을 양산하면서 불가피하게 가족의 구성과 가치관 전반의 재편성을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재편성을 가져오게 된다. 가정이 사회의 최소단위이기 때문이다.
헤어지느냐 마느냐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현명하게 풀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달라질 현실을 준비해야 한다. 새로 물갈이될 국회에서는 이혼한 엄마와 같이 사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그놈의 문제 많은 호주제도, 폐지하거나 전면 수정해야 한다. 이혼가정을 위한 복지예산도 늘리고, 교육현장에서 이혼가정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무엇보다도 빨리 경제를 살려내야 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인한 이혼이 얼마나 급증했는지 아는가? 올해 통계청 자료를 보면 무려 16.4%에 이르렀고 이는 환란 전의 3.7배에 달한다.
이혼하는 10명 중 8명이 후회한다는 통계가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충동적 이혼을 막기 위해 부부가 이혼에 합의하더라도 3~6개월의 유예시간을 ‘이혼숙려기간’으로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필자의 친구 녀석도 그 제도에 찬성하는 거 같다. 자식, 나이 먹고 세븐데이즈에 ‘파이널 스코어’ 같은 괜찮은(?) 칼럼도 쓰더니 철 들었나보다.
남자의 ‘사랑해’는 ‘현재는’이라는 단서의 생략이고 여자의 ‘사랑해’는 ‘당신이 사랑하는 한’이라는 조건의 생략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그런데 그 말을 거꾸로 해도 말이 되는 것을 아는가? 남자의 ‘사랑해’도 ‘당신이 사랑하는 한’이라는 단서가 있고 여자의 ‘사랑해’도 ‘현재는’이라는 단서가 있다. 현재 이혼을 생각하시는 분들께서는 한 번쯤 입장을 바꾸어 놓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고 자신과 2세들을 위해 부디 현명한 결정을 내리시길. 그대들의 앞길에 행복 있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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