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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스코어 - 6.3
폐인들이 늘고 있다. 본격적인 인터넷문명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폐인들이 생겨났다. 물론, 여기서 ‘폐인’이라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하고는 다른, 일종의 유행어다. ‘무슨 일인가에 빠져 그 일에 심하게 집착하는 사람’ 정도의 의미로 볼 수 있는데, 다분히 농담조의 뉘앙스가 묻어있다. 폐인들의 종류는 인터넷폐인, 게임폐인, 디카폐인, 드라마폐인, 인터넷게시판 등수놀이폐인, 등 무수히 다양하다. 신뢰할 수 없는 의학계 지인에 따르면, 폐인들은 팔다리가 마르고 똥배만 나온 특이한 신체구조를 가지게 되는데, 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고 생활습관, 식사습관, 배변습관이 불규칙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 의식 있는 폐인들 사이에서 ‘아침형 폐인’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폐인들 중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 ‘CD굽기 폐인’(이하 폐인)이다. 인터넷 파일공유 사이트나 프로그램을 통해 다운받은 음악, 영화, 게임 등을 CD로 구워내는 폐인들이다. 폐인들의 고백에 따르면, 파일을 한꺼번에 수백 개씩 다운로드 받으면서, 다운받은 파일들을 확인, 분류, 정리하고, 정기적으로 다운로드 진척상황을 확인하고, CD로 굽고, 틈틈이 파일변환, 오버버닝 등의 ‘고급무공’(?)을 갈고 닦느라 잠잘 시간도 없다고 한다. 한 달여의 폐인생활을 접고 지금은 모 고급잡지에 칼럼을 쓰고 있는 박모씨의 경우, 심할 땐 하룻밤에 50여장의 CD를 구운 적도 있다고 한다.
26일, 제4회 세계지적재산권의 날 기념세미나에서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2000년도 기준 통계자료를 분석, 발표한 것에 따르면, 우리나라 저작권산업은 전체고용의 6.3%, 국민소득의 6.2%, 수출의 8.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저작권산업의 성장률은 전체 명목 국민소득성장률을 크게 상회할 뿐만 아니라, 성장에 따른 부가가치, 피고용자 보수, 영업잉여 등이 자동차산업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 노동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유리한 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주 파이널 스코어는 저작권산업이 전체고용에서 차지하는 퍼센티지, 6.3이다.
불법CD 한 장을 굽는데 드는 비용은 정확히 공CD 한 장 값과 같다. 물론 그나마도 해당 콘텐츠의 개발업체들에게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는다. 개발업체들의 피해가 막심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국가적 입장에서 문제가 더 심각한 이유는, 불법복제의 대상이 되는 것들 대부분이 음악, 영화, 게임, 만화 등 문화콘텐츠 상품들이기 때문이다. 전체고용의 6.3%, 국민소득의 6.2%, 수출의 8.6%를 차지하는 저작권산업의 상품들인 것이다. 지난 14일, 작년 한국영상협회가 적발한 온라인 불법 영상물의 피해규모가 300억원에 이른다는 뉴스가 있었다. 적발된 것만 그 정도이니 실제 피해규모는 엄청날 것이다. 음반산업도 몇 년째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중음악, 영화, 드라마, 게임이 ‘한류열풍’을 타고 아시아를 휩쓸고 있지만, 관련 산업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도, 인기 가수들이 노래는 안 부르고 TV 오락프로그램에 나와 ‘온몸을 불사르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불법복제로 인기가 실제 매출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국면은 ‘고소 전쟁’으로 바뀌고 있다. 해당 산업에서 불법복제를 하는 개인들을 ‘도둑’으로 보고, 고소를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며, 우리나라에서도 곧 대대적인 고소가 잇따를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제 곧 폐인들은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지하조직이라도 만들어 투사가 되든지 폐인생활을 청산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될 것 같다. 정부에서도 해당 법규를 정비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폐인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폐인들이 별 생각 없이 밤새 CD를 구우며 ‘폐이닝’(폐인 + ing)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벌어야 할 돈을 못 벌어서,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진짜 폐인이 되고 있다. 정말 의식 있는 폐인들은 ‘아침형 폐인’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폐이닝’을 하는 폐인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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