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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스코어 - 123,000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요. 겹겹이 몰려다니는 뿌연 먼지들. 그 사이사이에 무서운 얼굴로 앉아있는 어둡고 울퉁불퉁한 덩어리들. 선생님이 떠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여긴 어딜까? 교실이었는데, 광호랑 몰래 딱지먹기 하고 있었는데, 쾅, 하더니 친구들은 모두 어딜 갔을까? 우리들이 너무 떠드니까 선생님이 화가 나셔서 쾅, 하신 걸까? 엄마, 왼쪽 얼굴이 뜨거운데, 바람이 먼지들을 한 꺼풀 쓸어가고, 아, 순정아, 저기 순정이가 있어요. 꼼짝도 안 하고 하늘만 보고 있어요. 얼굴이, 새빨간 피가, 선생님, 순정이 아파요. 누가 순정이 좀 도와주세요. 광호, 광호가 내 옆에 누워있어요. 꿈틀꿈틀해요. 광호야, 딱지 줄게, 일어나. 선생님, 엄마, 친구들 좀 도와주세요.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선생님이 화내실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먼지가 한 꺼풀 더 벗겨지고 어른들이 달려와요. 슬픈지, 화가 났는지, 잔뜩 찌푸린 얼굴이에요. 여기에요. 순정이가, 광호가 아파요.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아저씨 하나가 고무인형 같은 팔을 집어 들어요. 저건 호성이 팔인데, 겨울에 자치기 하다 다친 호성이 팔인데, 호성인 팔만 남겨두고 어딜 갔을까? 점점 더 많은 어른들이 울며 고함치며 달려오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선생님이 떠들지 말라고 하셔서 입만 크게 벌리는 걸까? 어른들이 너무 천천히 달려와요. 순정이도 아프고, 광호도 아프고, 호성이도 찾아야 되는데, 아, 저렇게 막 달리면 안 되는데, 선생님이 화내실 텐데, 엄마, 왼쪽 얼굴이 뜨거운데, 오늘 엄마, 아부지 일하시는 룡천역에도 가야 되는데, 신호 깃발 흔들게 해준다고 하셨는데, 순정이가 아프면 누구랑 가지? 친구들이 모두 아픈데, 사람들은 너무 천천히, 너무 느리게 달려와요. 엄마, 소리치면 안 되는데, 선생님이 화내실 텐데, 엄마.
지난 22일 발생한 북한 룡천역 폭발사고의 참상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지금도 피해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정확한 피해 집계 자체가 무의미하지만, 수천 명이 부상당했고, 그 중의 수백 명이 중태이며, 이미 수백 명의 사망했다. 2천여 채의 건물이 완파되었고, 6천 500여 채의 건물이 파손되었으며, 반경 1km 이내의 모든 건물들이 무너졌고, 반경 4km 이내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피해액은 3억~4억 유로(4,100억~5,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잠정 추산되고 있다. 이번 주 파이널 스코어는 룡천의 전체 인구 123,000이다. 그들 모두가 이번 참사의 피해자들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째인 지난 25일, 룡천 지역과 인근 신의주의 병원을 둘러본 구호기관 관계자들은 현지의 처참한 상황을 “지금까지 살면서 본 가장 비극적인 장면중 하나”라고 묘사했다. 병원에는 의료 장비나 의약품마저 거의 없어서 부상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 있는 글은 사건 보도를 접한 이후 필자의 눈앞에 자꾸 떠오르는 룡천의 참상을 룡천 아이의 시각으로 쓴 것이다.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이 바로, 사망자의 절반가량, 중상자의 상당수가 룡천역에서 불과 200m 지점에 있던 룡천소학교의 어린이들이라는 점이다. TV 뉴스를 통해 보도된 어린이들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피부가 온통 벗겨지고 까맣게 타버린 아이들이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 속으로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그 불쌍한 아이들을 어찌할까?
이번 룡천 참사를 겪은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 것은, 꼭 동포니 민족이니 하는 말까지 꺼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우리들 모두가 인간으로서 해야 할,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정치적으로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든, 김정일을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 조건 없이,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한다 해도 모든 것을 잃고 충격에 빠져있는 북한 사람들을, 그 불쌍한 아이들을 충분히 돕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서둘러도 이미 늦었다. 더 늦기 전에, 더 서둘러서 그들에게 달려가야 한다. 아이들을 하나라도 더 살려야 한다. 그 불쌍한 아이들을 어찌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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