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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스코어 - 9.7
모 기능성 남성화장품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속옷차림의 두 남자가 마주치는 순간 흘러나오는 다소 엉뚱한(?) 독백이 포인트였다. 이 땅의 기지 발랄한 장난꾸러기들이 그걸 놓칠 리 없었고 수많은 패러디 버전들을 탄생시켰다. 1. ‘개기름이 장난이 아닌데?’ ‘세수 한 번 안 했을 뿐인데.’ 로션 대신 개기름! 2. ‘냄새가 장난이 아닌데?’ ‘갈빗집 한 번 갔다 왔을 뿐인데.’ 로션 대신 페브OO! 3. ‘피부가 장난인데?’ ‘때수건 하나 바꿨을 뿐인데.’ 로션 대신 이태리타올! 이것들 말고도 수없이 많다.
모 인터넷 쇼핑몰이 지난 5월 20일 발표한 것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남성화장품 구매고객 숫자와 매출액이 작년 같은 기간의 7배, 9.7배로 각각 늘었다고 한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폭발적인 증가세다. 이번 주 파이널 스코어는 9.7이다. 이젠 대한민국 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버린 파이널 스코어를 선정함에 있어, 단군할아버지의 홍익인간정신(?)을 바탕으로 인내천사상(?)에 근간을 두고 항상 인본주의적(?) 원칙을 고수해왔던 필자가 이번 주엔 사람 숫자가 아닌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수치를 파이널 스코어로 선정한 이유는 나중에 밝히겠다.
우리나라 남자들도 화장품이나 의상 구매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되어오던 바였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열풍이 불기 시작해 날로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트로섹슈얼’이라는 말은 영국의 문화비평가 마크 심슨이 1994년 일간지 <인디펜던트〉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소비문화가 발달한 대도시에 살면서 미용, 패션, 쇼핑 등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영역이라고 생각되어왔던 것들에 관심을 가진 새로운 남성상을 일컫는다. 와이프 속옷도 훔쳐 입었다는 데이비드 베컴이 바로 메트로섹슈얼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서 언급한 화장품광고에서 피부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 두 청년을 포함해서 꽃미남 계열이 모두 메트로섹슈얼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통용어협회가 2003년 ‘올해의 단어’로, 뉴욕타임스가 2004년을 이끌어갈 10대 신조어 중 하나로 메트로섹슈얼을 지목했다고 하니, 그 열풍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남자들의 화장품 쇼핑이 급증하는 걸 보면 이제 우리나라에도 메트로섹슈얼 바람이 불기 시작한 모양이다.
메트로섹슈얼 열풍은 남성이 여성화 되고 여성이 남성화되는 전 세계적인 문화적 경향의 일부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가부장제 확립 이후 남성성, 여성성의 이름으로 인위적으로 분리된 성역할과 성의식을 교정하고 억눌려왔던 인간의 총체적 본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참 홍인인간적(?)이며 인내천적(?)이어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잊지 말라. 자본주의에서 공짜는 없다. 메트로섹슈얼이 되기 위해선 돈이 든다. 그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메트로섹슈얼 열풍 자체도 반 이상 다분히 상업적인 의도로 조장되고 과장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유로RSCG월드와이드(Euro RSCG Worldwide)가 2004년의 10대 트랜드 중의 하나로 메트로섹슈얼을 선정한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유로RSCG월드와이드라는 회사는 유럽 최대의 ‘광고대행사’다. 전 세계의 화장품산업, 의류산업, 미용관련산업, 연예계가 돈을 벌기 위해 ‘메트로섹슈얼’의 열렬한 전도사가 되어있는 것이다.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업체들은 이 전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숫자를 파이널 스코어로 잡은 이유?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 의미 있는 것은 홍인인간이나 인내천사상이 아니라 매출액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도 남자들이 화장을 했었다. 이집트, 로마시대에도 했었고 중국 송나라 때도 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양반남자들이 ‘분세수’를 했었다. 라이프스타일에도 유행이 있다는 얘기다. 예나 지금이나 유행 위에서 유행을 조망할 줄 알아야 자신만의 품위를 가진 유행을 연출할 수 있다. 물론, 좀 따돌림 받더라도 무작정, 그리고 꿋꿋이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다. 로션 대신 물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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