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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스코어 - 52.4
문화권을 막론하고 옛날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여성들을 미인으로 쳤던 건 ‘살찐 여자들이 아이를 잘 낳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속설에 불과하다. 모 산부인과 연구팀이 최근 첫 아이를 낳은 산모들을 임신 전 상태에서 저체중, 정상체중, 과체중, 비만 등 4개 그룹으로 나누고 각기 제왕절개율을 조사한 결과, 비만그룹의 제왕절개율이 52.4%로 가장 높았다고 지난 5월 27일 밝혔다. 이어 과체중그룹 35.3%, 정상체중그룹 25%, 저체중그룹 12.6% 순이었다. 비만 여성일수록 제왕절개율이 높은 것은 분만시 태아가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것을 곳곳의 ‘살’들이 가로막아 태아호흡곤란증 등의 응급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왕절개분만이 자연분만에 비해 산모와 태아 모두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그래서 이번 주 파이널 스코어는 비만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의미에서 이번 조사에서 비만여성들의 제왕절개율로 나타난 52.4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 10억 명 이상이 과체중이고 이들 가운데 최소한 3억명이 비만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비만환자들은 이로 인해 당뇨병과 암, 심장질환 등 각종 성인병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인류에게 비만은 급속히 확산되고 있고, 이젠 미용 상의 문제를 넘어 건강을 직접 위협하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인류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비만문제가 인류의 ‘생존전략’의 결과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비만문제는 근본적으로 인류의 ‘배고픔의 역사’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최근 백 년 정도를 제외한 인류의 역사 20만년 동안 배고픔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먹을 기회가 있을 때 배가 띵띵해 질 때까지 ‘때려’ 먹고 영양분을 저장해놓아야 혹시 닥칠지도 모를 미래의 배고픔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생존전략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 더러 있다. 필자의 대학시절 친구들 중에도 ‘보이면 먹는다’는 금붕어의 신념으로, 사막을 건너기 위해 물을 저장하는 낙타의 자세로, 동면을 준비하는 한 마리 곰처럼 뒷풀이 자리의 음식들을 저돌적으로 먹어치우던 무서운(?) 녀석들이 있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건강을 위해 자제를 촉구해야 한다. 경험학상(?) 그런 사람들, 나이 들면 거의 비만으로 가는 것 같다.
비만문제에 인류도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번 조사결과가 나오기 불과 닷새 전인 지난 5월 21일, WHO 연차총회에 참석한 회원국 보건장관들은 세계 제당업계의 반대를 물리치고 설탕섭취를 줄이고 적절한 다이어트와 운동습관을 권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비만퇴치 보건청사진'을 합의해 마련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비만이 공중보건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꼭 비만 때문이 아니더라도 건강한 삶을 위해서 좋은 식습관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패스트푸드가 ‘쥐약’이다. 적절한 운동도 꼭 필요하다. 바쁘고 귀찮더라도 자기 자신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냥 무작정 걷기만 해도 좋은 운동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취약한 것은 언제나 ‘교육’이다. 초등교육과정부터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보건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글의 논점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지만 필자의 입을 근질거리게 만드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사실, 지난 5월 27일 발표된 수치들의 가장 놀라운 점은 한국의 엄청난 제왕절개율이다. 지난 2001년 거의 같은 연구결과가 미국에서 발표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발표된 비만한 미국임산부의 제왕절개율은 8% 정도였다. 적어도 ‘제왕절개로 위협받는 건강’이라는 측면에선 대한민국에서 비만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산부인과 ‘선생님’들과 여성들의 의식이다. 한국에선 웬만하면 배 짼다! 둘째,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8억4천만 명이 기아와 만성 영양실조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기아로 인한 직, 간접 사망자는 매년 3천600만 명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 신이시여, 전 세계 인구 6명 중 1명이 비만으로 고민하는 사이, 열 살 미만의 어린이가 7초마다 한 명 씩 굶어죽고 있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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