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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입에 바른 내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어머니는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말 안 들으면 ‘패서라도’ 잘 가르쳐 달라고 말씀하셨다. 30분 남짓 특별할 것 없는 얘기를 마치고 일어서시며, 어머니는 핸드백에서 봉투를 끄집어내서 선생님의 호주머니에 집어넣으셨다. 선생님과 어머니 사이에 잠시 의례적인 사절과 강권이 오가고, 청소 담당이었던 아이들이 흘끔흘끔 쳐다봤다. 어머니 옆에 서 있던 나는 얼굴이 벌개져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두 개나 되는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학교에 대한 내 불신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이 고백을 하는 것은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기 때문이다. 학기 초에 ‘학부모 상담 기간’이 끝나면 아이들끼리 ‘누구네 엄마가 얼마 줬다더라’ 하는 것들을 화제에 올리기도 했다. 누군가 내 어머니도 ‘봉투’를 줬는지 물어오면 나는 화까지 내면서 극구 부인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비겁했다. 이제야 철이 들어 고백하고 사과하노니, 친구들아, 그때 내가 아니라고 했던 말, 다 뻥이었다. 대한민국의 다른 소심한 엄마들처럼, 울 엄마, 우편배달부 되어 참 부지런히도 봉투 날랐다.
내게 생각하기도 싫은 옛날 기억까지 떠올리게 한 것은, <선생 김봉두>라는 한 편의 영화였다. 그 선생, 이름 자체가 코믹하다. ‘金봉두’는 ‘돈 봉투’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 어느 학교에나 한 명쯤, 아이들이 증오해마지 않는, ‘돈벌레’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이 있는데, ‘김봉두’가 바로 그런 선생이다. 이 영화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참 ‘밝히는’ 선생 김봉두가 뜻하지 않게 산골 분교로 전근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적 완성도나 상업적 성공과는 별개로 의미 있는 영화들이 더러 있는데, 나는 <선생 김봉두>가 그런 종류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게 생각하기도 싫은 옛날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지금은 연락도 닳지 않는 놈들에게 사과까지 하게 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뭔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문제를 환기시키고 이야기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 참 문제는 문제다.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말할 때 내가 항상 주장하는 바가 있으니,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적 문제들은 가만히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교육의 문제로 소급된다는 것이다.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그리 훌륭하지 못한 한국영화들을 보고 나서 자주 들먹거리는 얘기가 ‘상상력의 부족’이다. 백 번 천 번 맞는 얘기다. 모든 훌륭하지 못한 영화들은 상상력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그 영화 만든 감독, 제작자가 학교 다니던 시절, 교육정책을 만들었던 분들과 선생님들께 정중히 물어보자. 언제 니들이 애들 상상력 키워주는 교육 해봤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는 상상력, 창의력 개발에 있어서 최악의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름대로 똑똑하고 독해서, 기를 쓰고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니까 그나마 이 정도라도 유지하지, 교육이라는 입력의 결과로 도출되는 출력의 기대치로만 보자면, 예술, 과학, 개발 쪽에선 아예 큰 성과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성과’한테 ‘봉투’ 주고 잘 부탁한다고 할 순 없는 거니까.
이상하게도 요즘 영화와 교육이 몸을 섞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선생 김봉두>가 영화 속에서 교육의 문제가 보이는 경우라면, 반대로 교육 속에서 영화가 보이는 경우도 자주 목격된다. 초등학교 축구부 숙소에 불이 나서 잠깐 사이에 귀한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한다던가, 신입 여교사에게 커피 타오라고 하시던 교장 선생님께서 그게 문제가 되자 귀한 목숨을 스스로 끊으시는, 참 영화적인 일들이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말 나온 김에 하고 싶었던 말 한 번 다 해보자. 먼저, 운동부 선생님들께. 도대체 애들 운동을 얼마나 잘하게 만들려고 수업도 안 들여보내고 매일같이 합숙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복날 개 패듯이 줘 팹니까? 그렇게 한다고 그 애들이 전부 호나우두 되는 거 아닙니다. 진학도 좋지만 제발 살살 좀 합시다. 다음, 운동부 학생들께. 운동한다는 분들이 힘 뒀다가 뭐하십니까? 남는 힘 개기는 데 적극적으로 좀 써보세요. 합숙 지겨우면 개기고, 시합 한 번 졌다고 맞으면 개기세요. 원래 힘이라는 게 그런 부당한 일 당할 때 쓰라고 키우는 겁니다. 다음, 학부모님들께. 아무리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해도 후레자식 되면 다 소용 없습니다. 다음, 교장 선생님들께. 다음부터 커피 잘 갖다 드릴게요. 다음, 모든 선생님들과 학생들께. 교장 선생님 약 올리지 마세요. 교육부에 계시는 높으신 분들께. 박아! 새 대통령과 새 교육부 장관께. 어떻게 좀 해보세요. 제대로 못하시면 앞의 교육부에 계시는 높으신 분들처럼 머리 박으라고 할 겁니다.
학교에서 받는 봉투는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가지 봉투는 내용물에 따라 구분되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하나는 지금까지 말해온 ‘돈 봉투’이고, 다른 하나는 ‘채변 봉투’다. 이 두 가지 봉투는 놀라울 만치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 더럽다. 2) 이기주의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3) 신성한 교육현장을 냄새로 물들인다. 4) 학부모들은 선생님께 봉투만 전달되면 책임의식을 덜 느낀다. 5) 선생님들을 냄새나게 만든다. 6)학생들 간에 위화감을 조성한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채변 봉투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채변 봉투야 기생충 박멸이라는 큰 도덕적 대의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아이들의 건강 증진과 에너지 절약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만, 돈 봉투는 그러한 대의나 공익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또 결정적으로 돈 봉투가 나쁜 점이 있다. 돈 봉투가 정말 나쁜 이유는 바로 교육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아이들을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봉투를 주고받는 순간, 교육 현장의 주인이어야 할 아이들은 기껏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부탁하고 부탁받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애완동물이나 물건이 되어버린다. 봉투를 주고받는 순간, 사랑스런 아이들이, 사랑스런 제자들이,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 속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두 개나 되는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몰라 당황해 하고, 바보처럼, 물건처럼 멍 하니 서 있기만 할 것이다.
물론, 학부모와 선생님들만 ‘봉투’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구조화되어 있는 문제이고, 따라서, 학생, 학부모, 교사, 정책 당사자가 다 함께 노력해서 교육 시스템 자체를 천천히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하거나 교장 선생님이 자살하는 일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접하게 되더라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내가 고등학교 때 가장 통쾌하게 본 영화 중 하나가 린제이 앤더슨이 만든 <이프...(If...)>라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학교의 부당한 억압에 짓눌리던 아이들은 학교 지붕 위에서 선생들에게 기관총을 갈겨버린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그런 일 벌어지지 말라는 법 없다.
p.s. 미안하다, 채변 봉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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